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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Oct 26. 2024

상상초월 영국 중학교 입학시험

어쩌다 보니 런던에, 어쩌다 보니 5학년에 온 아이는 9월에 6학년이 되었다. 여기서 1년만 살다 가자 했지만 아이는 영국 학교와 선생님과 친구들과 공원과 강아지들과 박물관과 미술관과 로열알버트홀 같은 공연장에 빠져버렸고. 나 런던에서 공부할 거야! 외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 나 같아도 학원 뺑뺑이가 일상인 서울 가기는 싫겠다.


나도 내년 가을 이맘 때쯤 우리 가족이 어디에서 뭐 하고 있을까 몹시 궁금하다. 알 수 없으니 일단 준비를 하자,라는 마음으로 얼레벌레 11+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와 근데 이게 진짜 보통 일이 아니다.


알다가도 모를

무엇보다, 잘 모르겠다. 초등 6년 마치면 다 같이 중학교 가고, 3년 뒤에 다 같이 고등학교 가는 한국과 다르다. 6학년 마치고 세컨더리로 가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9학년에야 옮기는 아이도 있다. 중학교 이름이 머 칼리지도 있고 아무튼 뒤죽박죽이다. 학교마다 보는 시험도 제각각이다. 가고 싶은 학교가 있으면 내가 알아서 정보를 찾아서 지원하고 맞춤형으로 준비 해야 한다.


물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모의시험도 보게 하고 시험 유형에 맞춰서 준비를 해주고는 있다. 하지만 아무튼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한다.


이 사회에 완전히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명문 학교로 진학하려고 애써야 하는 걸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어차피 비싼 학비 내는데 그냥 아무 데나 갈 수도 없고.


아이를 기숙사 학교로 보낼 것인가 매일 통학하는 이른바 데이 스쿨로 보낼 것인가. 남녀 공학이 나을까 그냥 여자학교가 좋을까. 런던에 있는 학교와 중소도시 혹은 대자연 속에 있는 학교 중 어디가 나을까. 선택지가 너무 많으니까 더 헷갈린다.


전형료도 학교마다 따로 받는다. 4개 학교 지원했더니 100만 원 넘게 들었나보다.

런던 복판, 바비칸센터에도 유명 여자학교가 있다. 교회 오른쪽 건물이 아마 City of London School for Girls다. 이미지 Lu Thomas

영국사립학교, 얼마나 드나?

심지어 노동당으로 정권이 바뀌더니 사립학교 학비가 엄청나게 오른단다. 그동안 영국은 사립학교 학비에는 부가세를 따로 안 물렸는데 노동당 정부는 세금을 때리겠다는 거다. 그것도 무려 20%.


예를 들어 1년 학비가 1억 원인 학교에 아이가 다니면 한 순간에 2천만 원이 늘어날 수 있다. 집에 아이가 셋이면? 으악.


과장하는 게 아니다. 영국 사립학교 학비는 가히 천문학적이어서, 연간 1억 드는 학교도 흔하다. 무슨 의대도 아니고 중학교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자세히 보면 이렇다. 위컴 애비라는 명문 여자 보딩스쿨의 경우다. 일단 우리는 외국인이니까 보증금이 비싸다. 입학 전형료 말고, 입학 시점에 따로 내는 보증금이 있다. 3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잘못 쓴 거 아니다. 3천만 원 맞다. 물론 보증금이니까 졸업할 때 돌려준다고는 한다.


학비는 아래와 같이 안내 되어 있다. 세금 오른 게 반영이 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금액은 일 년이 아니라 한 학기 기준이다. 영국은 2학기가 아니라 3학기제라는 점도 염두에 두고 계산해야 한다.


£16,975 Boarding per term(기숙사에서 지낼 경우/학기)

£12,900 Day per term(통학할 경우/학기)

Registration Fee: £350


기숙사에서 아이가 공부하게 된다면 그냥 기본 1억이다. 여기엔 학비는 물론 숙식, 현장학습 비용, 세탁료, 기본 보험료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음악 무용 연극 등을 배우는 레슨 비용, 전문 스포츠 강사에게 운동을 배운다면 그에 따른 강습료 등은 별도로 내야 한다.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졌다. 앞으로 어찌 되려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전형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내친 김에 위컴 애비 전형 절차를 보자. 우리 아이가 이 학교에 지원했다는 뜻은 아니다. 1896년에 문을 연 이 학교는 영국 전체 학교들 중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세컨더리 스쿨이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서울대 제일 많이 보내는 여자중고등학교 쯤 되겠다. 전형은 크게 두 단계다. ISEB 테스트와 자체 시험.

수험생이 ISEB 사이트에 들어가서 등록을 하면 일종의 수험번호를 받는다. 이 번호를 학교 지원자 정보 입력 사이트에 기재하게 된다. ISEB 테스트는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학교에서 치른다. 아이도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11월 말에 치를 예정이다. 해외에 있다면 영국문화원에서도 시험을 보는 모양이다. 수험생이 어디서 시험을 치든 이 결과는 지원한 상급 학교로 자동 통보된다.


ISEB테스트는 영어와 수학, 추론으로 구성된다. 2시간 15분 동안 컴퓨터 기반으로 진행된다. 컴퓨터 시험에 익숙해지도록, 아이 학교에서는 모든 6학년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한 대씩 나눠주고 연습하도록 했다.


추론은 언어 추론과 비언어 추론으로 나뉘는데, 어렵다. 언어추론 문제에 나오는 단어는 성인도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하다. 비언어 추론은 문제의 의도 자체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경우도 적잖다.


응시자의 수준에 따라 문제의 난도가 조정된다. 난도가 1~10까지라고 가정하면 첫 부분 문제들은 4~6 정도로 제시된다. 이 문제들을 풀어내면 조금 더 어려운 문제들을 제시한다. 쉬운 문제를 틀리면 더 쉬운 문제를 준다고 한다. 쉬운 문제 몇 개 실수하면 점수가 죽 내려가겠네.


2차 시험은 위컴 애비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진행된다. 1차 시험은 해외에서도 볼 수 있지만 2차 전형에는 반드시 학교로 가야 한다. 지원자는 이 학교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지원자들의 학업 성취도 뿐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 그리고 평가자들과의 상호작용까지 관찰하는 기회다. "이 학생이 우리 학교에 맞는 인재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문제 잘 풀어서 성적이 뛰어나도 얼마든지 탈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원자는 소규모 그룹 활동에 참여하면서 평가자의 질문에 반응해야 한다. 평가자가 언제 어떤 질문을 할지 알 수 없는 하루일테니 아이들이 무척 힘들겠다.


2차 전형에는 필기시험도 있다. 영어와 수학이 1시간씩이다. 영어는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체크하는 컴프리헨션 테스트와 크리에이티브 라이팅으로 구성되는 모양이다. 최종 합격 통보는 12월에 이뤄지고 3월에는 입학금을 낸다.


이 학교도 물론 장학금 제도가 있는데 받으려면 별도 경쟁을 거쳐야 한다. 최종 합격자끼리 하는 이 경쟁을 위해서는 다시 영어와 수학, 과학과 휴머니티 시험을 본다.


LAT, 언어적성테스트도 치르는데 '언어 속 패턴을 식별하는 능력, 문법적 개념이 단어를 형성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능력, 품사를 구별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한다. 


장학금은 아마도 영국인 학생들에게 우선 주겠지. 외국인에게까지 성적 장학금이 돌아올 가능성은 기대하는 건 욕심 아니겠나 싶다. 여기 온지 1년도 안 된 아이가 경쟁자들을 넉넉히 따돌릴 정도로 공부를 잘 하리라 기대하기도 물론 어렵고.


할 게 너무 많다

위컴 애비는 ISEB 시험을 보지만, 또 어떤 학교는 CEM이라는 시험을 치른다. 런던의 몇몇 학교는 공동으로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이른바 런던 컨소티움.


1차 시험이 그렇다는 얘기고, 2차는 또 학교마다 제각각이다. 영어 시험의 경우 어떤 학교는 creative writing을, 또 어떤 곳은 persuasive writing을 한다.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작문과 논술 쯤 되겠다.


대략 1시간 정도 시간을 주고 지식과 정보, 문법과 단어, 경험과 독창성, 논리적 완결성과 설득력을 과시하는 글을 써야 한다. 나더러 쓰라고 해도 머리가 아프겠다.


논술이야 요령을 외우고 연습을 하면 따라갈 수는 있겠는데 크리에이티브 라이팅이 더 어려울 것 같다. 한글로 소설을 쓰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어릴 때부터 영어 그림책 동화책 소설책 시집을 읽고 자란 이곳 아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제한된 어휘력 안에서도 말맛을 살리는 표현을 찾아야 하고 또 어찌됐든 제한 시간 안에 말이 되게 써 내야 한다. 어렵다. 어지간한 한국의 고등학생에게 하라고 해도 쉽잖을 것 같다.


와중에 애들 보면 봉사활동도 다니고 운동 경기도 열심이고 음악이나 미술 좋아하는 운동 연습도 제각각 열심이다. 성적 장학생, 수영 장학생, 테니스 장학생을 노리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대개 착하고 해맑다. 대단하다 다들.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 아이는 바이올린을 또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음악 장학금 정도는 노려보기로 했다. 음악 장학금은 대개 악기 레슨 비용을 학교에서 책임져 주는 구조다. 어떤 학교는 음악장학생에게는 학비 일부를 면제해주기도 한다.


공짜는 없다. 음악장학생은 각종 학교 행사에 나가서 연주하는 등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 입학 전형이 모두 마무리된 뒤, 대개 1월쯤에 장학생 후보자들을 모아서 따로 오디션을 연다. 대개 악기를 두 개 이상 다루기를 기대한다. 악기를 하나만 다루면 노래를 해도 좋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음악 실력을 공인 받는 편이 유리하다. ABRSM이라는 시험을 치러서 그레이드 6 이상을 받아야 한다. 연주 그레이드 6. 음악 이론 그레이드는 또 따로 5 이상.


그레이드가 필수는 아니라지만, 재능과 열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지만, 일단은 따둬야 한다. 그래도 집안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 것도,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모습 보는 것도 즐겁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중 하나다.


나야 즐겁지만 아이는 정말로 너무너무 바쁘다. 영어 수학 추론 논술 작문 공부만 하려고 해도 부담이 크지 않겠는가. 거기에 바이올린 연주 연습을 해야 하고 또 음악 이론 공부도 해야 한다. 눈코 뜰 새가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영국 교육에 경쟁이 아예 없는 게 절대 아니다.


우리 아이는 런던 온지 이제 갓 10달이 되었다. 이 친구가 10년째 배우고 익힌 아이들과 경쟁한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짠하다.


결과는 정말 모르겠는데, 어찌되었든 11+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압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고른 4개 학교, 그 중 몇 곳에서 최종적으로 오퍼, 합격 통보를 받게 될까? 내년에 우리 가족은 어디서 가을과 겨울을 맞이할까? 정말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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