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백수 Oct 19. 2024

런던에는 계절이 몇 개일까

구글에 fool's spring을 검색하면 전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올린 우스개를 볼 수 있다. 어디는 계절이 10개다, 어디는 12개다…겨울 뒤에 바로 봄이 올 것 같지만 또다른 추위가 왔다가 다시 따뜻해졌다가 또 한두 번은 춥다, 뭐 그런 식이다. 한국 같으면 꽃샘추위 한 단어로 퉁칠 텐데 왜들 저러고 노나 했다.


런던에는 12계절이 있다?

아내가 어디선가 찾아서 건네준 이미지를 보고 풉 웃었다. 아마 겨울 갔구나 하자마자 다시 어이없게 추운 날이었을 거다.

-겨울

-바보들의 봄 : 추위가 반짝 가셨다고 얇은 옷 입고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다 어디에나

-두 번째 겨울

-기만(사기, 속임수)의 봄 : 5월도 하순. 와 이젠 진짜 봄인가봐,라고 여행자들이 생각했다

-세 번째 겨울 : 거 봐. 아직 겨울 코트 넣지 말랬지 내가? 런더너들이 말했다.

-진짜 봄 : 아마 6월쯤?

-꽃가루? 알러지 조심!

-여름 : 여름! 여름이다! 축제! Let's celebrate SUMMER! 낮에 볕 쬐면서 Aperol 마시자!

-지옥 : 영국의 여름이 지옥? 이 색목인들이 한여름 한반도 불구덩이에 가봐야 런던에서 이런 나약한 소리를 안 할 텐데...

-가짜 가을 : 9월 초에 반짝 추위가 왔다. 아침 기온이 5도 쯤으로 내려갔던가?

-두 번째 여름 : 인디언 섬머? 으하하 아직 해가 길다!

-진짜 가을 : 으어.. 여름 다 끝난 거야?


챗 지피티에게 써보라고 했다

  겨울(Winter): 12월에서 2월. 우산은 필수고, 어딜 가든 "차 한잔 하시죠"라는 말이 들리는 계절.

  비가 오는 겨울(Rainy Winter): 3월에서 5월. 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겨울의 연장선 같고, 비가 멈추면 미세한 햇살을 "따뜻하다"고 느끼게 되는 시기.

  춥지 않은 비가 오는 계절(Not-Freezing Rainy Season): 6월에서 8월. 여름이라고 하지만, 갑자기 추워질지 몰라 카디건을 꼭 챙겨야 하죠. BBQ 파티를 계획했다가 갑작스런 소나기에 취소하는 건 여름의 상징이에요.

  곧 겨울이 올 계절(Pre-Winter): 9월에서 11월. "가을 옷 사러 가야지!"라고 말하지만, 매년 겨울 옷을 먼저 꺼내게 되는 계절이죠.


인공지능, 못 됐다. 틀렸다고는 못 하겠다만.


나무도 헷갈린다

여기 사람들은 "런던에는 여섯 버전의 여름이 있다고"라면서 껄껄 웃는다. 인디언 섬머가 9월에도 오고 10월에도 또 올 수 있다고. 때로 11월에도 남쪽 바다에서 따뜻한 고기압이 밀려오기도 한다고. 아직 반소매 옷을 넣지 말라고. 물론 거리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패딩조끼를 입고 털 모자까지 쓴 여행자들도 숱하다. 겨울에도 한낮에는 25도 안팎인 중동에서 왔다고 생각해보시라. 흐리고 바람 거세고 비 오락가락하는 런던의 가을이 왜 안 춥겠는가?


계절이 왜 저 지경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갑자기 확 더워져서 쭉 엄청나게 덥거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15박 16일씩 내리는 극단적인 날씨가 아니어서 저렇게 보이기도 한다. 조금 덥다가 곧 약간 쌀랑한 정도가 됐다가 다시 날이 좋았다가 이젠 좀 춥군,하게 되는 수준을 오간다.


물론 변덕은 매우 심하다. 일년에 네 계절이 있는 게 아니라 하루에 다 있다고 할 지경이니까. 강수량이 엄청나게 많지는 않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아주 잦다. 가방마다 우산이 꽂혀 있어야 하고 신발이나 겉옷을 방수 기능이 있는 천으로 만드는 이유다.


이쯤 되면 나무도 헷갈린다. 이 동네 가로수도 버즘나무, 플라타너스다. 이놈들이 8월 중순부터 낙엽을 떨구기 시작했다. 아직 여름볕이 쨍쨍한 날이 이어지던 좋은 시절에 이게 무슨 일일까 신기했다. 9월 초부터 귀신같이 비가 잦아지고 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내려갔다. 아 이거 벌써 가을이구나 나무가 먼저 알았구나 했다.


그런데 다시 인디언 섬머가 왔다가 또 가을이 잠깐 들렀다가 도망가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아직도 낙엽이 하나둘 드문드문 떨어진다. 서울에 있던 시절에는 가을비 내리면서 밤 사이에 바람 한번 대차게 불면 플라타너스 잎이 모조리 떨어졌다. 발목까지 푹푹 빠질 지경으로 낙엽이 쌓이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여기는 10월 하순에도 아직 녹색 잎이 매달려 있다.


서울의 나무들은 급격한 기온 변화에 적응하느라 한번에 잎을 모두 떨구는 전략을 선택한다. 반면 런던 나무들은 계절 변화가 느긋한 온대 해양성 기후의 세례를 받아서 잎이 긴 기간 동안 하나하나 세듯이 떨어진다. 거리를 청소하는 입장에선 한꺼번에 쏟아져서 하루 고생하는 게 나을까? 아님 석 달 열흘 동안 매일 낙엽을 쓸어 모으는 편이 나을까?


쓸 데 없는 생각은 그만 하고 이젠 겨울 옷을 꺼내둬야겠다.


오늘의 교훈? 런던에 올 때는 따뜻한 옷을 챙긴다. 경량 패딩도 좋지만 바람막이도 아주 좋은 생각이다. 얇으면서도 체온 유지에는 큰 도움이 된다.


방수 기능은 필수다. 털모자 좋다 머플러도 훌륭하다. 튼튼하고 멋스러운 우산은 런던 기념품으로 사가도 좋겠다. James Ince나 James Smith & Sons같은 곳은 꽤 유명하다.

이전 22화 좋아서 걷는 것만은 아닙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