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주로 혼자서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잘 모르겠다. 잘 쓴다고 느껴지는지 재치 있다고 느껴지는지 그것도 아니면 별로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는 수행평가로 글쓰기를 자주 했었는데 돌아오는 피드백은 하나같이 싸늘했다. 그리고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은 기분 나쁘지만 내가 쓴 글보다 훨씬 좋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존경의 마음보다도 저런 문체를 쓰고 저런 문장을 구사했는데 저걸 우수작으로 뽑았다고? 서평이 아니라 문학을 써놨는데? 하면서 시기질투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수행평가에서 점수를 잘 받았어야 했으므로 그 글을 흉내 낸 글을 써냈다.
이것 외에도 글쓰기에 대한 의심은 사그라 들 줄 몰랐다. 글만 썼다 하면 족족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문장의 구성이 어쩌고,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 같고 어쩌고저쩌고 반항기 가득한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데 뭐 어쩌라고 꿍시렁 꿍시렁 이런 경우가 반복 됐다. 졸업하기 전까지 국어를 담당한 사람들로부터 글을 잘 썼다는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냥 글을 잘 썼다는 평을 잘 못 들어봤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영어 독서 에세이에서 가장 큰 호평을 받았었다. 영혼이라고 갇다 바칠 기세로 글을 쓰긴 했지만 그동안 썼던 글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생각했고 한국어로 쓰는 글도 그 정도의 성의는 기울였었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 내 글에 대한 평가도 보지 않게 되었고 남의 글도 보지 않았다. 비교하고 평가받는 시간이 너무 잔인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교양으로 들었던 글쓰기 교수님은 처음으로 내준 과제에서부터 나에게 글을 잘 쓴다는 평을 주셨다. 기억하기로는 '말과 비교되는 글의 특성은 무엇인가'가 주제였는데 고민해서 냈던 8 문장 정도의 한 문단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 냈던 글도 하나 빼고는 다 너무 좋다는 호평을 받았고 나는 그 과목에서 A+를 받았다. 심지어는 이제 글쓰기 수업은 안 들어도 그냥 A+를 주겠다는 교수님의 제안에도 칭찬받는 게 너무 좋아서 그냥 수업을 듣겠다고 할 정도였다.
근데 좀 궁금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매일 비판만 당하던 내 글이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하루가 멀다 하고 칭찬만 해주는 건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좋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는데 정확이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어서 그냥 물어봤다. 내 글이 왜 좋고 잘 썼다고 하는지 물어봤다. 글의 방향성이 명확해서 그 점이 좋다고 했다. 정말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대학이 재미가 없었는데 그때가 대학에 가고 나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얼마 안 되는 즐거운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신기한 것은 글쓰기 교수님 뿐만 아니라 나의 지도교수님도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주셨다는 거다. 원래 모든 과제에 코멘트를 달아주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이들과 비교될 정도로 긴 코멘트를 달아주면서 글을 잘 쓴다고 엄청 칭찬해 주셨다. 나에게 지도교수를 왜 이리 잘 따르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 코멘트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할 거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은 받았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잘 쓰면 도대체 왜 고등학생 때는 단 한 번도 칭찬 같은 건 들어보지 못했지? 수행평가를 위해 쓰인 너무 많은 글들이 사랑받지 못한 채로 버려졌다. 아마 지금은 영혼까지 갈아버릴 것 같은 소리를 내는 분쇄기에 의해 다 가루가 되어 버렸을 거다. 갑자기 너무 마음이 좋지 않다. 나도 기억 못 하고 손에 쥐고 있지도 않는데 평가자들도 필요가 없어서 세상에서 없애 버렸다니...
저렇게 글이 버려지고 내가 비참해지는 과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내 글보다 정확이 뭐가 더 좋아서 우수작에 걸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글을 보면서 겨우 저 정도가 우수작이란 말이야 같은 말을 하면서 비아냥 거렸다. 차마 저 정도는 나도 쓰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는데 저 정도로 글을 썼으면 아마 우수작은 내 글이 걸려 있었을 테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비단 우수작뿐만 아니라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참 많이도 질투했다. 동급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질투했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글을 써서 상을 탔다는 기사를 보면 그건 그것대로 질투했다. 화도 조금 났다.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냥 질투가 나니 자연히 감정이 격해진 것도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관련도 없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질투하고 시기하고 깎아내리기까지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질투가 났다.
그러다가 한 번은 교내 잡지에 기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다른 애들의 등쌀에 휘말려 교수님과 식사하는 자리였는데 거기서 교수님이 글 쓸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주제가 뭔지, 무슨 글을 쓰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는데 내가 흥미를 느낀다고 생각하셨는지 글을 쓰라고 하셨고 나는 교내 잡지에 쓸 글을 썼다. 아무 글이나 써도 된다고 하셔서 정말 아무 글이나 써서 냈는데 나는 차마 그 잡지를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의 글이 같이 들어가 있을 텐데 그 안에서 내 글이 얼마나 초라하고 형편없을지 상상하는 것조차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른 사람의 글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유는 나의 글이 상대적으로 별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힘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이 별로인 게 밝혀지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우니까 다른 사람의 글을 시기 질투 하면서 내 글이 별로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다. 또 한 번 좋은 눈으로 보자고 마음 먹지만 이 시기질투가 언제 끝날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