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과 함께 사는 법

웃어넘길 수 없는 건망증의 무게

by 주현정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가 사라졌다.

평소처럼 번호를 누르려던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5년 동안 매일같이 눌렀던 숫자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건망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둘째를 등에 업고, 한 손에는 첫째를,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 앞에 섰다. 그런데 비밀번호가… 희미했다. 이 집에 산 지 5년이나 됐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 번호, 저 번호 생각나는 대로 눌렀다. 하지만 깜빡이는 건 실패 신호뿐이었다. 아이들은 보채고, 문은 여전히 열릴 생각이 없었다. 결국 수업 중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방해될까 싶어 목소리를 낮췄다.

“여보… 나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나. 좀 알려줘.”

잠시 정적이 흘렀고, 남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는 무사히 들어왔지만, 마음속에는 걱정이 소용돌이쳤다.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아이를 낳아서 그런 걸까? 걱정은 걱정을 먹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말 이러다 가족 얼굴까지 잊어버리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스쳤다. 사실 예전에도 나는 종종 깜빡하곤 했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몸에 밴 습관처럼, 무심히 눌러왔던 번호였으니까. 남편은 별일 아니라며 웃어넘겼지만, 위로가 되진 않았다.


그 후로 나는 내 건망증에 집착하게 됐다. 무언가를 또 잊을 때면 괜히 더 좌절스러웠다. 갑자기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럴까? 두 아이를 돌보는 매일은 모든 게 ‘처음’이었고, 내 정신은 늘 얽힌 실타래 같았다. 둘째 수유로 잠까지 설치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아마 그 시절의 고됨이, 내 뇌를 가장 먼저 공격했을 것이다.


대형 쇼핑몰에서는 주차 자리를 잊어버려 몇 바퀴를 도는 일쯤은 평범했다. 휴대폰은 부엌 선반 위에서, 텀블러는 옷장 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여행을 가면 꼭 한두 가지는 빠져 있었다. 아이 기저귀를 챙기지 않아 숲 속 숙소에서 난감했던 날도, 남편 속옷을 빼먹고 간 날도 있었다. 한두 번은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자 남편은 여행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줬다.


“아이 낳으면 다 그래. 나도 그래.”

주위 엄마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건망증 에피소드도 만만치 않았다. 냉장고에서 리모컨이 나온 이야기는 오히려 귀여운 축에 속했다. 그렇게 나의 건망증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신경 쓸 일은 조금 줄었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래서 나는 메모를 시작했다. 휴대폰 메모장에는 사야 할 물건들, 수많은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다. 오늘도 메모장을 열어야 했다. 메모 습관이 자리 잡자 잊는 일은 훨씬 줄었다. 이제는 ‘뭐였지?’ 하고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없다. 그저 메모장을 열면 된다. 사람은 하루 평균 55분을 물건을 찾는 데 쓴다고 한다. 아마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내 뇌는 더 늙고, 깜빡하는 순간은 더 잦아질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려워하거나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처럼 작은 방법들을 찾아 나를 지킬 것이다. 메모 한 줄, 알람 하나가 나를 지켜주듯, 그때의 나는 또 다른 지혜를 배울 것이다.

건망증은 여전히 나와 함께하겠지만, 그 덕분에 나는 더 유연해지고, 더 나답게 나이 들어갈 것이다.

잊는 나도, 기억하는 나도 모두 ‘나’이기에, 오늘도 웃으며 살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순간을 다 잊더라도—그때의 나는 여전히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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