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주부의 소확행
엄마, 오늘도 '좋아서' 가요?
10년 차 주부인 나에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작은 공간이 있다. 창밖으로 사계절이 흐르는 것이 고스란히 보이는 오래된 카페. 나는 이곳을 ‘나만의 아지트’라 부른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나는 늘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육아에 지쳐 숨이 턱 막히는 날이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세수조차 못한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주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진짜 나’를 만났다.
이 카페는 결혼 전부터 단골로 다니던 곳이다. 세월을 머금은 가구들은 나이를 먹었고, 벽면의 사진들도 바랬지만, 여전히 아늑하고 따뜻하다. 항상 한결같은 미소로 반겨주는 사장님, 그리고 자주 마주치는 단골들도 그대로다. 그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나는 나만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요즘은 “간판 가게가 제일 잘된다”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듣는다. 수많은 가게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간판을 제작하는 업자가 가장 바쁘다는 말이다. 더 크고, 더 새롭고, 더 화려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요즘 사람들. 멋진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좋아요’를 받기 위해. 그런 시대 속에서, 1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이 작은 카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사장님의 따뜻한 인사가 들린다. 나는 단골답게 말한다. “오늘은 따뜻한 걸로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사장님은 내 취향을 이미 알고 계신다. 연하게, 진하게, 혹은 시럽을 몇 번 넣는 지까지. 그 기호를 모두 기억해 주는 이곳이 참 좋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 향이 가득한 가게 안, 봄이면 테라스 자리는 늘 경쟁이 치열하다. 흐드러진 벚꽃과 허브 향기, 건너편 하천의 물소리가 어우러지면, 그 순간이 얼마나 완벽한지 모른다.
한쪽 벽면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누군가 읽다 덮어둔 페이지를 다시 펼쳐 읽기도 하고, 너무 재미있는 책은 몰래 잘 보이지 않는 귀퉁이에 숨겨두기도 한다. 보기 좋게 장식된 가짜 책이 아닌, 사람의 손때 묻은 ‘살아 있는 책’들이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이다.
다른 벽면에는 오래된 사진과 글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그중에는 10년 전 내가 쓴 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속 아기는 이제 제법 자랐겠지. 나는 이곳에서 태교를 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자라 또다시 단골이 되었다. 내 아이들이 벽면 한쪽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 그들이 남긴 낙서 한 줄, 작은 그림 하나가 그 공간의 새로운 추억이 되었다.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카페는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따뜻함을 지켜줄 거라 믿고 싶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오랜 단골들에게 소박한 위로를 주듯이. 언젠가 내 아이들이 자라,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엄마를 떠올려 준다면, 그것만으로 가슴 벅찬 행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