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한 일상과 생각의 모양
이렇게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에는 어린 시절 신나게 물놀이를 좋아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한강고수부지 수영장에 놀러 가서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 아이는 그저 물장구치는 물놀이를 즐겼다. 물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그리고, 그 순간 더위를 잊어버릴 수 있는 그 행복했던 순간이 가끔씩 생각난다. 그러던 와중 한 번은 내 키보다 더 수심이 깊은 곳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사투를 벌였지만 그 당시 어떤 어른도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꽤 많은 물을 마셔가며, 불규칙한 호흡을 반복하며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물 밖을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여전히 물을 무서워한다. 허리 이상 물이 차오로는 곳에 가면 그때 그 순간들이 떠올라서 몸이 움츠러드는 경험을 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나를 얼마나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나는 그 본능을 간직하며 일상을 산다. 마땅히 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와 본능을 적절하게 버무려 살아내고 있다. 아니, 사실은 잘 버무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이 꽤 깊숙이 서려있다. 지금의 모습보다 더 잘 살아내고 싶은 용기, 혹은 가능하다면 본이 되는 삶으로 점철되고 싶은 이상(理想)과 더불어 주거의 불안, 미래의 생계 불안 따위를 기저삼은 경제적 현실 본능이 버무려있지 못하고 뒤엉켜있는 모양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지고 선명해지는 것 중에 하나는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커지는 것과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는 빈도수의 증가는 대체적으로 비례한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고 채워야 하는 욕망과, 여의치 못한 현실과 사그라져 가는 의지가 복잡하게 균형을 이루며 정체된 괴로움을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괴로움을 안고 얼마 전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혹서기의 시작과 관계없이 아내와 나는 심신의 안정과 환기를 위해 휴식이 필요했고 마침 조용하고 적당한 곳이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향했다. 일본의 작은 도시 도쿠시마는 이제 막 매스컴을 통해 여행객들에게 조금씩 알려진 곳이다. 아직은 유명 대도시보다 덜 알려져서 그런지 관광객도 많지 않아서 썩 쾌적했다. 우리의 야심 찬 계획 중 하나는 꽤 괜찮은 초밥집에 가서 초밥요리를 음미하는 일이었다. 탐색하던 중에 발견했던 그 초밥집을 향하는 그 순간이 꽤 흥미로웠다. 매번 여행 다니면서 기분 좋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생각한 곳으로 계획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다. 나의 의지와 본능이 충실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포만감이 만족스러운 상태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갔던 곳은 어느 노부부가 운영하는 허름하고 소박한 초밥집이었다. 이곳을 향했던 이유는 어떤 유명세보다 화려하지 않아도 주변의 평가가 꽤 훌륭했다는 점인데,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그 소박함과 품위를 단번에 알아차리릴 수 있었다. 10명도 채 앉기 어려운 작은 공간, 작은 소리로 가득 찬 라디오와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 일왕 내외의 사진이 걸린 벽면, 굴곡이 선명한 주름진 얼굴에 흰색에 깔끔하고 단정한 조리사복을 입으신 할아버지 부부 내외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으면 좋으련만, 일본어가 짧은 탓에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원활하게 대화하진 못했어도 두툼하게 썰어주시는 생선과 밥알이 살아있던 초밥은 투박함 속에 깊이가 더해 있었다. 듣기로는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초밥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래된 시간을 헌신하셨기에 나는 그 시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온화한 성품과 실력, 소박하지만 세월과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마치 늘 괴로움을 달고 사는 내게 훈계와 가르침을 주는 듯했다. 주어진 것을 귀히 여기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이 마치 음식 속에 배어있는 것 같아서 더욱 그러했다.
내가 겪는 괴로움은 크게 보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실은 두껍지 않은 얇은 의지, 타인과 비교하는 유약한 마음,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려는 의지와 그렇지 못한 본능의 충돌, 온갖 참을 수 없는 가벼움들이 뒤엉킨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의 본능을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마치 물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그 마음과 노 셰프의 손으로 만들어진 두툼한 생선초밥에 배인 본능을 욕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