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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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수술 결과가 나오는 데는 수술 후에도 며칠이 걸린다. 수술 후, 며칠 간은 수술자국의 상태와 피주머니에 피가 충분히 고이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수술 결과에 대해서는 기다리라는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어제 수술 받은 환자답지 않게 안색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데는 절제 수술만 한 것이 한 몫 한 듯 보였다. 자가지방으로 복원을 한 환자들은 몸의 두 군데에 상처를 내어 며칠을 더 고통스럽게 회복해야 하는 데 반해, 절제수술로 끝난 나는 암덩어리와 살덩어리를 덜어내 무게마저 가벼워져 안색이 좋아 보이는 환자가 되었다.
물론, 수술 받은 왼쪽 팔이 당장은 올라가지 않았다. 정상범위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꾸준한 재활운동은 필수이다. 절제술을 포함하여, 임파선까지 도려내었기 때문에 당장은 내 왼쪽 팔이 들리지 않는다. 수술 후 4일 차였나, 그 때부터 팔 재활 운동을 시작했던 것 같다. 병동에 마련된 휴게실 같은 곳에 환자들이 모여 팔 재활 영상을 보며, 따라한다. 재활 운동을 따라하는 환자 중에는 항암 중인(모자를 쓴) 환자가 많았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암세포의 크기가 큰 경우에 항암을 먼저 하고 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직은 겨드랑이가 많이 당기고 핏줄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단순하고 재미없는 동작의 반복. 난 누구보다 열심히 따라했다.
내 인생은 ‘팔 재활부터 다시 시작이다.’ 수술 다음 날 안색이 좋아 보인다는 건 그냥 들은 말이 아니었다. 몸이 가벼웠다. 수술부위도 아프지 않았다. 달고 있는 피주머니가 살짝 불편했을 뿐이었다(오히려 피주머니를 꽂은 관을 나중에 빼는 것이 아프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었는데, 퇴원하는 날, 피주머니 관을 뽑아내는 것 마저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암 수술이 뭐 이런 가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 가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안 올라가는 팔로 병원식을 다 먹은 후, 빈 식판도 그냥 두면 나중에 식사 배급해주신 간호사님이 다시 와서 가져갈 것을 나는 옆 환자 식판까지 야무지게 챙겨 복도 식판 수거대에 가져다 놓았다.
‘이래서 유방암 환자를 날라리 암환자라고 하나?’
문제는 수술 후 3일 째부터 나타났다. 변비다. 과일을 챙겨 먹고, 유산균을 몇 병 씩 챙겨 먹어도 소식이 없었다. 변비는 수술 후 겪는 매우 흔한 후유증이었다. 내 옆에 환자는 좌약까지 넣었으니 말이다. 10일 정도 입원해 있는 동안 결국 화장실에 갔는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갔어도 아마 순탄치 않게 해결했으리라.
유방암 병동은 주치의 말고도 당직을 서는 유방외과 의사들이 돌아가며 환자 상태를 자주 체크해주고, 질문이 있으면 답해주는 운영체계를 갖고 있다.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이 상태에서 복원이 가능한지, 언제쯤 복원할 수 있는지, 어떤 복원수술이 나에게 적합할지’였다. 아직 수술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는 앞으로 할지도 모를 항암에 대한 걱정보다 추후에 내가 마음이 바뀌었을 때, 내가 온전히 회복되었을 때, 가슴 복원 수술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다. 있다 없다는 게 이렇게 미련 가득한 일일 줄 몰랐다.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왼쪽 가슴이 있길 바랐다.
수술결과가 나왔다. 나의 경우, 상피내암과 침윤성암이 동시에 섞여 있는 유방암으로 전체 크기는 3.3cm이고, 그 중 침윤성암의 크기가 1.8cm로 초음파에서 확인했던 것 보다 0.3cm 더 크게 나왔다. 그 새 암세포가 더 자란 건지, 수술 후 조직 검사 결과가 더 정확한 건지는 알기 힘들지만, 암세포라면 충분히 그 새 더 자랐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소엽내암이라는 상피내암의 한 종류인 암도 1.2cm를 차지했다.
수술 전 날 밤 임파선에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그렇게 겁을 주었던 것과는 달리 5개의 임파선을 제거하여 조사하였지만, 전이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얻게 된 예상 병기는 1기 초였다. 그 밖에 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 음성, 암세포 증식 지수는 10% 미만이었다.
앞에서 간단히 얘기했지만, 보통 유방암 치료 방법에는 항암제, 항호르몬제, 난소억제주사, 방사선, 생물학적 표적치료(허셉틴 주사) 등의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는 나이, 전이, 폐경 여부, 그리고, 수용체의 양성 여부, HER-2 종양유전자의 과발현 여부 등을 따져 결정하게 되는데, 아직 선택적 검사가 하나 남아 있다.
병기가 나처럼, 1기가 나오는 경우(미세전이가 없고, 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음성의 환자의 경우) 항암제 치료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젊은 나이대의 경우 재발의 위험 때문에 항암제 치료를 대부분 받지만, 항암을 하는 것이 재발을 막는 데 효과가 있는 가, 항암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차이가 있는 가를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검사가 있다. 바로 온코타입 DX이다. 수술 시 떼어낸 종양 조직 중 일부를 Genomic Health 중앙검사실, 즉, 이 유전자 검사법을 개발한 미국의 한 회사 검사실로 보내 암의 활성도를 예측하고 점수를 매긴다. 점수 분포도는 0점에서 100점까지이며, 0점에서 25점 사이를 받은 경우, 항암이 재발을 막는데 거의 효과가 없다고 보며, 즉, 항암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이며, 26점에서 100점 사이의 점수는 항암을 하는 것이 재발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퇴원 날짜를 얼마 두지 않고, 담당의가 찾아와 내 임상 조건이 온코 검사를 받기에 적합하다면서, 온코타입 DX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예상 병기 및 임상 조건들이 저위험군에 속하긴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이기도 하고, 저위험군에서도 온코타입 검사의 점수가 높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무조건 안 받는 것도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 검사 비용이 꽤 비싸다. 400만원이 넘는 금액이며, 비급여 항목이다. 보험사마다 환급 기준이 다르기도 하고, 치료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으로 보통은 환급을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입원시에 검사를 받는 경우, 치료 명목으로 일정 부분 환급이 되기도 하니,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입원기간 동안 검사를 신청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검사를 신청하면 2주 정도 후에 결과가 나와서 보통 퇴원 후에 그 결과를 들을 수 있다. 그 결과에 따라서 미리 예약해 두었던 진료도 때로는 취소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퇴원하고 며칠 있다가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간호사의 목소리였다.
“온코타입 검사 받은 거 결과가 나왔는데, 점수가 아주 좋네요.”
“종양내과 예약은 취소할게요, 유방외과 예약도 좀 당겨서 다시 잡고요.”
내 온코타입 점수는 0점이었다. 담당의도 0점을 받은 환자는 나를 포함 두 명 밖에 못 봤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허무한 느낌이 이런 걸까? 0점의 의미는 무엇일까? 0기 암인 상피내암 조직을 잘못 보낸 것은 아닐까? 내 이름이 너무 흔해서 다른 사람의 검사결과와 뒤바뀐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항암은 면제되었다. 내가 항암 치료를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리 가족 사진도 찍어 두고,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었다.
‘그래, 다행이다. 항암까진 안 해서…’
그런데,
‘항암을 안 해도 괜찮겠지?’
유방 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보통 난소 억제 주사를 맞고, 항호르몬제까지 함께 복용하며 치료를 이어간다. 나의 경우, 온코타입 점수의 영향인지, 항암에 이어 난소 억제 주사도 안 맞아도 될 것 같으나 환자 본인이 불안하면 맞아도 된다는 애매한 진료 내용을 얻었다. 내가 불안해야 하는 이유는 유방암은 결국 여성 호르몬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호르몬을 가능한 최대로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써 보겠느냐? 아니면, 온코타입의 결과에 따라, 굳이 필요 없어 보이는 치료는 빼겠느냐?는 내 선택에 맡겨졌다.
항호르몬제인 타목시펜은 갱년기 증상이 대표적이며, 갱년기 증상이라 함은 무월경, 감정기복, 질 분비물, 얼굴이 화끈 거리는 증상 등이 있고, 특히 정신적으로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부분에서 많은 환자들이 괴로워한다는 후기를 접했다. 의사도 만약 약을 복용하기 너무 힘들면 말 하라고 하는 정도이니, 보통약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타목시펜이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치료법이니 우선 해보기로 했다.
복용한 지 첫 두 세 달은 생리가 없었다. 이렇게 앞으로 없을 줄 알았다. 그러다 곧 생리가 돌아왔다. 심지어 규칙적으로 생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한 두 달은 또 건너뛰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해 온 것이 나의 증상이다. 의사는 이 약을 복용해도 생리를 하는 환자가 있다고 했고, 생리를 해도 괜찮은 것인지 묻는 질문엔 불안하면 난소억제주사를 맞으라는 답변을 했다.
복용기간이 4년이 넘은 지금, 내 나이는 한국나이로 44살이다. 어쩌면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폐경이 올 수 있는 그런 나이이다. 그래도 생리는 계속 한다. 항호르몬제를 먹는 대도 말이다. 질 분비물은 많이 나와서 속옷을 하루에 두 번 이상 갈아입고, 없던 배란통도 생기고, 자궁 내막이 두껍다는 진단이 나와 조직검사도 받았다. 뭔가 생리를 하긴 하는데, 양껏 못하게 막는 그런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양껏 못하므로 자궁내막은 늘 두꺼운 상태이다. 불쌍한 내 자궁. 그리고 감정기복은 원래도 심했는데, 더 심해지고, 이제는 울부짖기도 하며, 얼굴은 여드름 난 것처럼 붉어져 있다. 복용기간이 늘어날 수로 표면적인 증상들이 점차 더 많아지고, 진해진 느낌이다.
수술한지 1년 차 검사가 있는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오랜만에 남편이 차로 병원에 데려다 주기로 한 날인데, 집 앞에서부터 많이 막힌다. 늘 그렇듯, 유방 초음파, X-ray, 디지털 유방 촬영 그리고 채혈 등의 검사가 예약되어 있다. 유방 초음파 시간은 이미 차 안에서 지나버렸고, 나와 남편은 검사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도착했다. 검사 시간에 늦은 탓일까? 남편이 자주 오던 검사실을 몰라 혼자 헤매다 와서는 짜증을 낸 탓일까? 오늘은 초음파 검사를 받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터진 것이었다.
수술 부위 통증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고, 왼쪽 팔도 이제 정상 범위까지 올라간다. 육체적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평화도 같이 찾아와 아무 생각없이 정기 검진을 잘 다니다가, 갑자기 초음파실에 누워 아무것도 없는 내 왼쪽 가슴을 드러내고 보니, 서러운 감정이 폭발했다. 전혀 예견된 것이 아니어서, 울고 있는 나도, 초음파실 의사 선생님도 많이 당황했다. 휴지를 건네시고는 별 다른 말을 해주시진 않았고, 나 역시 정신을 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만큼 당황스러운 눈물이었다. 아직은, 아직도 내 왼쪽 일자 모양의 수술 자국은 의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나 조차도 거부하고 싶은 그런 존재였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후, 유방외과 진료를 보러 왔다. 진료 시간 20분 전쯤, 한 연구 간호사가 나를 찾는다. 설문조사 관련 내가 연구대상자가 되었는데 설문조사에 참여하겠냐는 설명을 듣고, 설문조사에 관한 설명문 및 동의서에 사인을 한 후, 설문지를 건네 받았다. 연구 내용은 유방암을 진단받은 젊은 환자의 육아스트레스와 자녀의 정서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아이가 없는 내가 연구대상자가 될까 싶었는데, 아이가 없는 대상자에 관한 질문들도 많이 있었다. 연구간호사가 내가 답한 설문지를 훑어보고 점수를 매기는 듯하더니, 우울증 강도가 높으니, 암통합센터의 정신과에서 상담을 한 번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슬픈 표정으로 친절하게 권유했다. 그리고, 내 진료시간이 되자, 유방외과 주치의에게도 그 내용을 전달하는 듯했다. 갑자기 주치의가 평소답지 않은 친절한 말투로 ‘요즘 갑자기 기분이 우울하고 좀 그러냐?’고 한마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고, 난 ‘아니요, 전 괜찮은데요!’라고 대답하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내 감정이 내 마음대로 표현되지 않는 다는 걸 깨달은 순간, 이미 우울증이라는 병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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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바닥에 ‘쿵’하고 앉는 순간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배에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아팠다. 아랫배에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 같은 무거운 느낌과 짜증을 유발하는 통증, 나이 40이 넘도록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생리가 끝난 후, 며칠지나 시작되는 이 통증은 규칙적으로 나타났고, 곧 배란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생리통은 매우 심한 정도로 있어왔지만, 배란통은 처음이었다. 배란통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타목시펜을 먹기 시작한 시기와 비슷하다. 타목시펜을 먹은 지, 두 세 달 후부터 배란통이 시작된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생리는 규칙적으로 다시(약을 복용한지 두 세 달 만에) 시작되었고, 생리통이 없어지고 배란통이 생겨났다. 배란일에 맞춰 시작되는 통증은 짧아도 5일은 갔다. 물론, 통증이 심할 때, 통증이 끝날 무렵, 생리가 끝난 직후 등 산부인과 초음파 검진을 자주 받았지만, 배란통의 원인은 알 수 없고, 그것이 타목시펜 때문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공통된 결론을 얻었다. 통증이 심할 때 검사를 해 보면, 보통 물혹이 크게 자리하고 있거나, 물혹이 없을 때도 아팠던 때는 자궁내막이 살짝 두껍다 정도여서, 보통은 상세불명의 통증으로 진단 처리되기 일수였다. 타목시펜 복용시 자궁내막증식증이나, 자궁내막암 등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결국 자궁내막이 조금씩 두꺼워지는 건 분명 타목시펜의 영향일텐데, 그것이 배란통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배란통 자체가 원인 불명의 것이며, 배란통이 있어도 자궁 자체에 큰 문제가 없다면 그냥 지나가게 두자는 것이다. 유방외과의사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란통을 겪는 환자의 수가 많지 않으며 보통 폐경 증상, 즉, 얼굴이 화끈거리고,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더 많다고 했다. 나처럼 타목시펜을 먹어도 생리를 계속 하는 사람이 있고, 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며 역시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다는 것. 이 배란통이 타목시펜 때문일 수도 있느냐는 질문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는 반문이 올 뿐이었다.
타목시펜을 복용한지 4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생리를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컨디션(정신적인 것 포함)이 안 좋았을 때, 자궁내막조직 및 용종 걷어내는 수술을 받았을 때 등 두 세 달 씩 건너 뛰다 가도 다시 생리는 돌아왔다. 두 세 달 씩 안 할 때마다 이제 폐경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없던 배란통이 생겼다. 생리통은 없어졌다. (타목시펜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생리통이 있던 사람이 보통 배란통을 겪는다고 한다.)
-질 분비물이 많이 나온다.
-치질이 있다. (항문외과 의사는 치질(변비)이 생긴 이유가 타목시펜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였으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식단 관리를 잘 못한 이유가 크겠지만, 시기적으로 타목시펜 복용 후 생긴 것이다.)
내가 겪는 이런 증상이 타목시펜 때문일 수도 있고, 타목시펜을 먹지 않았어도 40대 초중반 여성이 폐경 전에 겪는 증상일 수도 있고, 내가 관리를 잘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이제는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원인을 안다고 해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인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원인을 연구하는 이도 없기 때문이다.
***
벌써 수술을 받은 지 5년이 다 되어간다. 중증환자로서 마지막 검사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받을 검사는 골스캔, CT, 유방 디지털 촬영, 흉부촬영, 초음파 등이다. 유방 초음파나 흉부촬영 등은 6개월에 한 번씩 해 온 검사이나, 골스캔과 CT와 같은 다량의 방사선을 쬐야 하는 검사는 필요시 2~3년에 한 번 씩 하게 된다. 전신에 전이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검사이며, 이제 5년이면 중증환자 보험 적용도 끝이고, 약물치료도 끝이다. 그러니, 아무데도 전이가 되어있으면 안 된다. 이제 유방암 환자라고 징징대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미, 너무 많이 쉬어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니, 무엇이라도 미리 좀 했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이제 진짜 집에서 환자 코스프레하며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있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수술직후엔, 내가 이대로 몸도 병신, 마음도 병신이 될 까 싶어, 뜨개질에 필라테스에 한국무용(은 왜?)까지 알아보고, 코스터도 만들고, 필라테스도 열심히 다니고, 한국무용은 하루 다니고 그만두었지만, 뭐든 열심히 하려 했지만, 지금의 나는 취미도, 운동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그냥 기운 없이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있는 잉여의 인간이다.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하는 약을 먹으면서 우울증, 탈모, 질염, 자궁내막증식증, 월경이상, 얼굴 붉어짐 등의 증상을 겪으며, 그 동안 잘 버텨왔다고, 누군가 격려해준다면, 고맙게 받겠다. 다른 증상들은 익숙해지기 도 해서, 이게 약물로 인한 증상인지조차 잊어버렸다면, 우울증은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낀다. 언젠가부터, 가족에게 울부짖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 내용의 반은 나를, 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 잘 버티고 견뎌온 나에게 나 자신만큼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데 그게 잘 안 된다.
마지막 검사와 마지막 진료를 받고 나면, 기분이 어떨까? 벌써 5년 전 일이 되어버린 지금,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몸을 가지게 되었고, 여성 호르몬을 더 맞지는 못할 망정 억제해온 내 몸 안의 것들은 왠지 엉망이 된 것 같다. 유방암이 무서운 것은 이 두 가지일 것이다. 몸이 달라진다는 것, 여성성을 거스르는 호르몬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 그 과정과 결과가 참 참혹하고, 허무하다. 이와 같은 내용들이 결국 우울증으로 가게 하는 일종의 루틴과 같은 것일까?
이제 와서, (앞에 당당하게 쓴 내용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서, 내가 선택한 수술법에 대해 후회가 남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 시간이 지나보니, 그렇다. 블로그 친구분이 그렇게 전절제를 하지 말라고 말리셨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그때는 이 분이 나에 대해, 나의 인생에 대해, 내 가치관에 대해 뭘 안다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그 분은 내가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걸 아셨던 것이다. 당신이 후회한 것처럼. 내 가치관 따윈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원래도 없던 것이어서 더 없어지니 몸이 가볍고, 원래부터 이런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가도 균형이 맞지 않는 건 맞지 않는 거니까.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어떤 이의 눈에는 내가 전이도 안 되고, 항암도 안 하고, 그래서 머리카락도 안 빠지고, 아주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게 내 가장 솔직한 심정이다. 인간은 항상 후회를 한다.
이제 병원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