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

by 혜진

“뭐? 56만 원이라고?”

“아니요, 5만 원 6천 원이요. 보험이 적용되면 4만 원이래요.”


귀농하신 지 8년 차, 읍내 치과에서 치과 진료를 받으시는 것이 마음에 안 드신다 하여, 서울 대형 병원 치과 진료를 보게 해 드리고 수납을 하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듣고 싶은 대로 들으신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이 당신이 듣고 싶은 내용으로, 아니,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내용으로 필터링되어 들리는 듯하다. 대형 병원이라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올까 걱정을 하셨을 터. 이미 아버지의 머릿속엔 숫자 ‘5’의 자릿수가 만 원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아버지는 치아로 고생 중이시다. 오래전에 한 임플란트가 안 좋아진 건지, 남아 있는 치아가 이제 수명을 다하여 아픈 건지 아버지가 아프다 하는 정확한 의중을 알기 어렵다. 그냥 치과 의사가 불친절해서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것 일 수도 있다. 뭐, 아버지만의 중대한 이유로 가는 동네 병원마다 정을 못 붙이시고는 떠돌이 환자로 살아오셨다.


“아무래도 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것 같아.”

“네? 블랙리스트라뇨? 그런 건 없어요. 아버지.”

“아니야,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괜히 너까지 피해를 보는 것 같아.”


최근에 내가 치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오른쪽 위 어금니의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았으나, 엑스레이 상 별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그 아래쪽 어금니의 상태가 안 좋으니, 그쪽을 치료하는 것이 낫겠다는 소견이었다. 크라운을 씌워야 할 정도를 썩은 범위가 넓었는데, 통증이 애매하게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의사와 신경치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한 달 넘게 임시 치아를 박아 놓고 또 주문한 치아를 약하게 접착해 놓고 고민하다, 신경 치료를 하지 않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의사와 진지하게 상담 끝에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신경 치료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치료는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이 일련의 과정을 들으시고는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를 내뱉으셨다. 내가 블랙리스트여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고, 이 리스트를 모든 치과 병원이 공유를 하고 있으며, 가족인 나까지 그 명단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그 사실을 아는 근거는 지금 치료받는 치과 병원 의사가 그렇게 얘기했다는 것이다. 물론, 치과의사가 진짜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해 버리셨다. 이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할 방법은 없다. 아니, 설득하기 힘들 것이다.


앞에도 얘기했듯이, 아버지는 한 병원에 정착하지 못하셨다. 다니던 몇 군데 병원 중 한 곳에서 임플란트 몇 개를 하기로 하고, 비용을 다 지불했다가,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고 환불을 받아 오신 적이 있다. 이 일로 인해 당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다. 의심만 많으셨지 누구에게 옳은 소리 한 번 못해 보신 아버지께서 그 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당신이 환불을 한 자체가 병원에 피해를 끼친 것이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블랙리스트… 있을 수도 있다. 서비스직에 몇 년 간 일해왔던 나로서는 뭐,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누구도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 그 블랙리스트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자처한 그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아버지는 스스로 상처받고 계셨고, 그 상처는 곧 의심으로 바뀌어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작은 불친절함에도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지나친 망상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나 지금 서울이야. 그 병원에 돈을 주고서라도 블랙리스트에서 네 이름을 지워달라고 해야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서울이라고요? 아빠 혼자?”


서울까지 어떻게 오셨다는 건지, 지금 서울 어디에 계신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따윈 중요하지 않으신 듯 끊어 버리셨다. 돈을 주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현금 들고 다니시면서 여기저기 흘려 잃어버리기를 밥 먹듯 하시는 분이 얼마를 들고 와서 어디에 계시다는 건가. 설마 휴게소마다 들러 충전해야 겨우 서울까지 왕복할 수 있는 봉고 전기차를 타고 오셨다는 건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아빠 지금 어디라니?”

“아니, 치과 간다고 그래서 읍내 치과인 줄 알았지. 세상에 서울까지 갈 줄 누가 알았겠니? 집에 보관하던 돈다발을 다 들고나갔어. 어쩌면 좋으냐, 네 아빠.”

“지하철 탔다는 것 같은데,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네 아빠 좀 말려봐, 제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어디세요? 아빠, 블랙리스트 같은 건 없어요. 아빠, 거기에 돈 주고 오시면, 정말 이상한 사람 돼요.”

“아니야, 있어. 내가 알아. 내가 알아서 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신데요?”

“석계역. 순재랑 같이 갈 거야.”


아버지 친구분 성함이었다. 아버지도 혼자서는 자신이 없으셨던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오히려 아버지 친구분과는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면, 아저씨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아버지를 설득해 주실 거라 믿었다.


아무래도 문자가 나을 것 같았다.


[아빠, 블랙리스트 같은 건 없어요. 신경치료를 안 한 것은 의사와 긴 고민 끝에 제가 결정한 것이고요. 저는 블랙리스트와 상관이 없어요. 가져가신 돈은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는데 쓰세요. 절대 돈 주고 오시면 안 돼요. 그리고 이 문자 친구분께도 보여주세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정말 옛 병원을 찾아가 돈을 주실 것이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이런 무모한 행동이 날 너무 힘들게 했다. 아버진 분명, 이것이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결해야 앞으로 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으셨을 것이다. 가뜩이나 유방암 환자인 딸이 치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겪었고, 그것이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망상이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아버지를 너무 방치한 것인가.’

‘지금이라도 정신과적 치료를 받으시게 해야 할까?’

‘정신과 치료가 먼저인가? 치과 치료가 먼저인가?’


아버지 친구 분과 연락이 닿았다.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저씨, 아버지가 왜 저렇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블랙리스트 없는데 자꾸 있다고 하시고, 차라리 들고 계신 돈을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데 쓰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진작 모시고 갔어야 하는데…”


아저씨께서 듣기에도 블랙리스트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여서 그런 건 없다고 아버지를 설득하고 있고, 아저씨네 근처 큰 병원에 아버지를 데려가 치료를 받겠다고 하신다.


3차 병원 진료를 위해서 더 작은 병원의 진료의뢰서가 필요한 거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에도 아버지께 읍내 병원에서 의뢰서를 받으시면 그때 내가 3차 병원을 예약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하지만 아저씨께서 3차 병원이어도 치과는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께서도 그렇게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셨다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가 보시겠다고 하신다.


몰랐다. 무조건 의뢰서가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그동안 아버지께 의뢰서 없으면 안 된다고, 의뢰서 타령만 했었다. 후회할 틈이 없었다. 아저씨께서 아버지를 모시고 큰 병원에 가는 그림은 그려져서는 안 됐다.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친구 분과 얘기를 잘 나누신 건지, 처음보다는 많이 차분해지셨다.


“아빠, 친구 분과 차 한잔 하시고, 오늘은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제가 큰 병원 예약해 둘 게요. 한 번 큰 데서도 진료받아봐요.”


누군가에게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돈, 시간 낭비이고, 번거롭고, 지치는 일이지만, 아버지에겐 꼭 필요한 듯 보였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 큰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망상에서 시작된 일은 그 아버지의 그 딸이듯, 나의 자책으로 끝이 나는 듯했다. 친구분께서 터미널까지 아버지를 모셔다 주셨고, 몇 시 차로 내려가시는 지까지 확인하고, 그날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휴대폰만 붙든 채, 불안한 정서로, 통화만 끝나면 눈물이 났다.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웬만해서는 자차를 모시는 분이 자차가 전기 봉고차가 된 이후로는 서울에 잘 올라오시지도 않던 분이 웬일로 고속버스를 다 타시고, 거기에 몇 십 년 간 이용해 보지도 않으신 지하철을 타 보시고, 차라리 혼자 친구를 만나러, 딸을 만나러, 모험하러 오신 거라면 매우 환영할 일이었다.


그렇게 내려가신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셨다. 다행히 대학병원 진료가 정말 의뢰서 없이 바로 잡혔고, 아버지와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버지 친구분도 마침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게 있으셔서 오신 김에 아버지가 진료받는 치과 병동까지 와 주셨다. 왠지 아저씨께서 내 눈치를 보시며, 이미 지나간 얘기인 블랙리스트에 관해, 다시 한번 그런 건 없다고 상기시키시면서, 멋진 친구임을 자처하셨다.


원래는 큰 병원에서 나머지 임플란트를 하시려고 하셨으나, 진료를 받고 나오시더니,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내려가서 하신다고 하셨다. 아, 물론, 기존에 다니던 읍내 치과 말고, 새로 생긴 읍내 치과로 가실 예정이다.

아저씨께 감사한 마음으로 병원 내 베이커리에서 선물용 롤케이크와 쿠키를 사서 선물해 드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버지를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셨다. 물론, 나도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신 김에 단둘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릴 계획이었지만, 성질만 내는 딸자식보다는 말 통하는 친구와 있는 모습이 더 편해 보이셔서, 또 아저씨께 아버지를 맡겼다.


이렇게 쉽게, 아니 어렵게, 끝날 일이어야 했을까? 실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시기 전에 엄마와 통화하다 소리를 질러대 버린 일이 있었다.


“왜 이렇게 날 괴롭혀!”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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