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턴

by 혜진

오늘도 루틴대로 진료를 마치고,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뽑아 지정해 둔 약국으로 빠르게 향한다. 빨리 이 덥고 사람 많은 병원을 벗어나고 싶다. 병원 후문으로 향하는 길, 허리가 구부정하다 못해 90도로 꺾인 한 할아버지가 후문 쪽 회전문을 향해 나처럼 빠른 걸음으로 전진하고 계신다. 하필 오지랖 강한 내 시야에 들어온 이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막 가시다가 허리를 펴 전방을 확인하고 다시 허리를 굽히고 목표지점을 향해 막 걸어가시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이 할아버지의 목표지점은 회전문인 것 같다. 회전문 양 옆에 있는 여닫이 문으로 방향을 틀 생각은 없어 보이고, 저 속도로 땅만 보고 가다가는 회전문이 열리는 찰나를 못 맞추고 부딪힐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 왜 저 할아버지는 보호자 없이 오셨는 가? 90도 구부러진 허리는 고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어디가 아프셔서 큰 병원에 혼자 오신 걸까?’ 이런 안일한 생각 따위를 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놀라운 속도로 어느덧 회전문 앞까지 오셨다. 회전문 옆에 휠체어 버튼을 눌러 회전 속도를 낮춘다. 내가 버튼을 누르고 있는지 아셨는지, 할아버지께서는 주저함 없이 바로 회전문을 통과하신다. 문제는 빠른 걸음 그대로 회전문 안에서도 전진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허리를 펴서 전방을 확인하실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상태라면 문이 열리기도 전에 또 부딪히는 그림이 그려진다. ‘하… 뭔가 티 내면서 도와 드리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점퍼의 끝자락을 아주 살짝 잡아본다. ‘너무 가볍다. 당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빨리 가지 마세요. 부딪쳐요, 할아버지.’ 내가 뒤에서 잡고 있다는 걸 아셨는지 할아버지도 걸음 속도를 살짝 낮추시더니, 문이 열리자마자, 이내 튀어 나가신다. 약국으로 가는 승합차 대기 줄까지 서신 것을 보면 진료를 받고 나오시는 게 분명하다. 할아버지께서 댁까지 안전하게 가실 수 있도록 또 다른 이들의 도움이 이어 달리기 마냥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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