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여행 좀 다녀올 게.”
13년 만에 남편이 처음으로 외박을 했다.
남편은 흔히 말하는 외곬이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게 평일 루틴이며, 토요일에는 13년째 같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일요일에는 디아블로를 하며 집에서 휴식하는 것으로 주말을 마무리한다. 13년째 가는 마트는 아직도 내비게이션 없이는 불안해하고, 매 번 가는 길이지만, 내비게이션이 잘못된 길을 알려주면, 그 길로 간다. 13년째 한 동네에서 출퇴근을 하지만, 주변에 무엇이 생기고 없어지는지 나보다 모르고, 더 편한 광역버스 라인이 생겼다고 얘기해 줘도 늘 타고 다니는 신속한 지하철을 더 선호한다. 10년 전 일을 어제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고 있고, 어제 일은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되묻곤 한다. 13년째 매일 아침을 차려주지만, 자신이 결혼 전에 아침을 안 먹었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은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코로나가 유행이던 시절 개발자인 남편은 약 2년 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라고 해서 출퇴근으로 사용되던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거나, 요리를 해 먹거나, 잠깐 낮잠도 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늘 출근하던 시간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아침을 차려 식탁에 놓을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점심과 저녁도 다 차려 놓아야 와서 먹고, 10분이면 이미 다 먹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마치 회사일을 본인이 혼자 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재택근무를 하며 2년을 집에서 삼식이로 보냈다.
원래 아이 계획은 없었다. 둘이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땐, 초등학생 수준의 대화와 몸짓으로 서로를 웃겨 주고, 집에서 예능을 보며, 디저트를 챙겨 먹는 낙으로 주말을 보냈다. 우리는 항상 붙어 다녔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따라와 주는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하기도 했다. 어디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남편을 결국은 내가 챙겨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보다 가도 내가 말없이 자러 방에 들어가면, 꼭 따라 들어와 내 옆에 눕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 5년 전에 나는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고, 곧바로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었으며, 남편은 2년 간 재택근무를 하며, 삼시 세 끼를 차려내는 것 말고는 늘어져 있는 내 모습에 좀 충격을 받은 듯했고, 나는 남편의 도움 없이 삼시 세 끼를 차려내고 치우면서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남편은 쉼 없이 달려갔다. 재택근무가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한 달간 고민하다 이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일하던 회사에서 남은 휴가를 쓴 것 말고는 쉬지 않고 바로 지금 회사로 이직했다. 더 좋은 조건으로 옮기게 된 것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남편이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남편의 매일은 출퇴근이 전부였고, 우리에겐 아이가 없었고, 여전히 티브이를 보고 밥을 먹으며, 같은 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언젠가는 깨져야 할 루틴이었다. 서로 누군가가 먼저 깨 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
여행계획 한 번 세워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세운 여행의 모든 계획에 태클을 걸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와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혼자 여행을 하겠다니!’,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묻고 싶었지만, 묻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심지어 날짜도 정해버렸다. ‘뭐야, 설마 진짜 가겠다는 거야?’ 그날이 점점 다가오는 데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잊어버린 걸까?’, ‘그냥 한 말이었겠지?’ 남편은 기차표를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어라? 표까지 예약했다고?’ 행선지는 아버님이 계신 부산이었다. 기껏 남편이 갈 수 있는 곳이 부산뿐이었던 것이다. ‘그래, 부산이든 어디든 나와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고 싶은 거구나.’ 사실 혼자 여행을 다녀오라고 부추겼던 건 나였다. 너무 루틴에 의해 사는 사람 같아서 안쓰러웠다. 그런데, 진짜 자신의 의지로 가겠다고 하니, 이건 꼭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출발 시간도 묻지 않았고, 언제 돌아오는 지도 묻지 않았다. 숙소를 잡았는지, 가서 뭘 할 건지, 아버님을 만날 건지 등은 일체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그가 여행을 하겠다는 취지에 부합하는 암묵적 배려라고 생각했다.
여행 당일이 되었다. 나도 이 날에 맞춰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평소와 다른 이유의 적막을 홀로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SRT를 타러 나가야 되는 상황이고, 나 역시 약속장소에 가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 사놓은 커피와 과자들이 있어서 혹시 기차에서 먹을 거냐고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작은 쇼핑백에 커피와 물 그리고 과자 하나를 넣어 준비해 두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던 남편은 아직, 버스 정류장에, 내 옆에 앉아 있다. 자의는 아니다. 작은 쇼핑백을 손에 쥐고, 그저 예약해 둔 기차 시간에 맞추어 영혼 없이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영혼 없이도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있었다. 나 역시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나온 것뿐, 남편을 배웅하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려 같이 지하철을 탔다. 목적지는 서로 다르지만, 목적지까지 가는데 지하철만 한 교통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아직, 남편은 내 옆에 있다. 지하철 안, 내 옆에서 내가 중심을 못 잡고 쓰러질까 나를 꽉 붙들어 주고 있다. 남편이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한 그날 남편은 한참이나 내 옆에서 나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한 손에는 여전히 쇼핑백을 들고, 뭐가 들었는지 모를 백팩을 메고, 그렇게 옆에 있었다. 손잡고 같이 SRT역으로 가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그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색하게, 억지로, 우리에게 필요한 이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