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지"

by 이곰

60대에 퇴직하신 아빠에게

이런저런 제안을 자주 드렸다.


"이거 한번 해 보세요."

"저거 한번 배워 보세요."

그럴 때마다 아빠는 늘 비슷한 대답을 하셨다.


"하기 귀찮아."

"내 나이에 배울 수 있겠냐."


새로운 시도를 좀처럼 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빠가 이제 80대가 되셨다.


어느 날 가족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조금은 핀잔드리려는 마음으로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왜 그렇게 다 안 한다 하셨냐고.

그런데

아빠의 대답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지.”


아빠는 곧 삶이 마무리될 거라 생각했기에

굳이 새로운 걸 시작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거였다.


할아버지가 간암으로 60대에 돌아가신 것도

아빠에게 영향을 줬던 것 같았다.

아빠에게 노년은

길게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곧 끝날 시기였던 셈이다.


이제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TV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정정한 어르신 인터뷰 자막에

나이가 90세로 써져 있으면

화면의 얼굴과 자막을 번갈아 다시 보게 된다.

함께 TV를 보던 70대인 엄마도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야, 아흔인데도 말도 또렷하고

눈빛도 살아 있네. 대단하시다.”


요즘 신체 나이는

실제 나이에 0.8을 곱해야 정확하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경우를 자주 본다.


관리 잘하고 생활 습관이 좋은 어르신들은

예전의 어르신보다 몸과 정신 건강이

훨씬 더 좋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지”라고 말씀하시던

아빠는 60대 때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신다.


“우리 손녀 결혼하는 거 보고

죽어야 할 텐데.”

요즘 아빠가 종종 하시는 말씀이다.


예전에는

“우리 손녀 대학 가는 거 보고”였는데

이제는 “결혼하는 거 보고”로

슬쩍 목표가 바뀌셨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50대의 모습은 아니다.


앞으로 나는 예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먹게 될 것이다.


내일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오래 살 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살지도 모르는 것
역시 인생이다.


아빠가 몰랐던 것처럼

나도 지금
내 앞에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무엇이든 해 보려 한다.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지.”

이 말을 혹시 나중에 나도 하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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