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응급실에서, 나는 혼자였다

by 이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혼자 사는 삶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이전보다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다.
TV 속 고독사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고
특히 아플 때는 현실이 더 선명해졌다.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했던 시절.
백신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당시 분위기는 백신 맞는 게 거의 의무에 가까웠다.


꺼림직했지만
직장을 다니는데 백신을 맞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두려움을 안고 결국 백신을 맞았다.

그런데 맞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진정시켜 보려했지만 증상은 더 심해졌다.


백신을 맞았던 병원에 가 증상을 설명했지만
“여기서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그때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계속 심호흡을 해봤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19를 눌렀고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하지만 모든 검사 결과는 정상.
응급실에서도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는 말뿐이었다.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이 많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늦은 밤 응급실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날 나는 그 상황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했다.
연락하면 달려올 가족은 있지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상황에서
응급실에 왔다고 부르기가 애매했다.

그리고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 삶은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


당연한 말인데

막상 현실로 체감하니 묘한 현타가 왔다.


이 이야기를 동네에서 오고가다 알게 된 두 명의 친구들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 두 친구 모두 50대 싱글이고 부모님은 돌아가신 공통점이 있다.

그분들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덜 느낀 거예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형제는 빠르게 남이 되었고

명절은 가족 행사가 아니라 피해야 할 날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명절에 여행 일정을 잡는다고도 했다.

부모님이 떠난 순간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

나는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동생 가족과의 관계도 좋다.

하지만 먼 훗날 부모님이 떠나시고

동생 가족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그때는 정말 '혼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삶에는 각자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있다.

4인 가족은 4인 가족대로

싱글은 싱글대로

어느 쪽이 더 무겁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무게가 가장 무겁게 느껴지니까.


이제는 내가 짊어진 무게를 차분히 살펴봐야 할 때 같다.

남은 삶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보려 한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지금 내게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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