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by 이곰

정리 상태는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고 한다.

TV에 집이 쓰레기로 가득 찬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그 사정을 들여다보면 마음의 병을 겪는 경우가 많다.
공간의 상태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상태와 닮아 있다는 말이

그래서인지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해 엄마에게 종종 야단을 맞았다.
입었던 옷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의자나 옷걸이에 던져두는 일이 많았다.
커서도 그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직장을 다닐 때 집은 거의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보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다음에 하지.’
‘계절 바뀌면 하지.’
‘이사 갈 때 한 번에 하지.’

그렇게 계속 미뤘다.


그러다 퇴직 후 인터넷 속도가 느려 통신사를 바꿔야 하는 일이 생겼다.
새 인터넷 선을 깔려면 최소한 선이 지나갈 공간은 확보해야 했다.

거실을 둘러보다 작은 한숨이 나왔다.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고

랜선을 설치해야 할 TV 주변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참에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운동기구는 운동기구끼리, 식물 관련 물건은 그것들끼리 따로 모았다.

그런데 거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방과 주방도 상황은 비슷했다.


결국 온 집안을 뒤집기로 했다.

수납장과 서랍 속 물건을 모두 꺼내 바닥에 펼쳐놓는 순간

‘내가 큰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막했지만 하나씩 제자리에 놓기 시작하자

조금씩 질서가 생겼다.

쓰지 않는 것은 버리고, 재활용할 것은 따로 분리했다.
수납 가구를 닦고 같은 종류의 물건을 한 공간에 정리했다.


하루가 지나고 몇 번이나 수납장을 열어보며

정리된 분위기를 괜히 다시 확인했다.
어렵지도 않은 일을 왜 이렇게 오래 미뤘을까 싶었다.


예전에는 약 하나를 찾으려면 온 집안을 다 뒤져야 했다.
마그네슘은 안방에, 비타민은 거실에, 칼슘은 주방 구석에 있었다.

원하는 걸 찾으려고 집안 여기저기를 헤맬 때마다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마음도 답답해졌다.


태풍이 불면 바다가 바닥부터 뒤집히며 환경이 정화된다고 하던데
수납장 안에 같은 종류의 물건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시원해졌다.


지금은 사용한 물건을 가능하면 제자리에 바로 놓으려 한다.
귀찮다고 빈 공간에 던져두기 시작하면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다.


물건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정리는 공간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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