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이 오십에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운동 자체보다 결심이 더 낯설었다.
예전의 나는 정적인 운동을 선호했고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 늘 망설임이 앞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에서 이전의 운동방식으로는
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건강검진 결과표는 점점 점검해야 할 항목이 많아졌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제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활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처음 크로스핏 체육관 문을 열던 날을 기억한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운동 강도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내가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했다.
나이 오십에 시작하는 운동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후의 시간은 예상보다 다채로웠다.
바벨을 처음 들던 날의 긴장, 월워크 동작을 시도하며 느꼈던 두려움
젊은 회원들과 함께 운동하며 생긴 어색함과 연대감
그리고 점점 단단해지는 몸을 느끼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키우는 일이 아니었다.
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나 자신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하이록스 대회를 준비하던 시기에 이석증이 찾아왔고
응급실에 가고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으며 두 달 가까이 병원을 오갔다.
큰 증상은 많이 좋아졌지만 잔 어지럼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걷다가 어지럼증이 올라오면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지?'
어지럼증이 나의 일상을 두려움으로 덮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걷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크로스핏을 하면서 허벅지가 꽤 단단해졌는데
그렇게 쉽게 넘어지겠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내 허벅지를 믿어.”
그 문장은 운동에 대한 자부심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주문'에 가까웠다.
어지럼증 속에서도 그 말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석증이 심했을 때는
누워 있어도 종종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내 머릿속이 물이 반쯤 차 있는 수족관 같았다.
몸을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수족관의 물이 출렁이듯 진동이 느껴졌다.
그때마다 조용히 주문을 외우곤 했다.
갱년기를 지나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건강 신호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운동도 가끔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거고
때로는 '운태기'에 빠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앞으로도 운동을 꾸준히 계속 하리란 걸.
이 글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크로스핏에 대한 기록만은 아니다.
나이 오십에 몸을 다시 돌보기 시작하면서 겪은 변화와 시행착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한 나의 삶에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늦게 시작해도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지금도 여전히 크로스핏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진 듯 체육관 바닥에 널브러진다.
여전히 어설프고,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나 스스로 나를 지탱할 힘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으니 그것이면 족하다.
나는 오늘도 운동하러 나가며 나에게 말한다.
"내 허벅지를 믿어.
그리고 나 자신을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