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어린 나의 스승
어느 날 코치가 제주도에서 열리는 크로스핏 대회에 나간다고 했다.
평소 개인전만 뛰던 코치가 이번엔 친구들과 추억을 쌓으러 3인 릴레이 경기에 나간단다.
그런데 팀 이름에 숫자 '92'가 섞여있다.
"코치님, 숫자 '92'가 무슨 의미예요?"
"아, 저희 팀원 세 명 다 1992년생이라서요."
'그렇구나, 1992년생이었구나....'
코치의 출생연도를 안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묘한 현타가 왔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해가 1992년이다.
그렇다. 나는 92학번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코치가 태어났다.
나는 지금 나보다 스무 살 어린 스승에게 크로스핏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코치에게 말을 놓은 적이 없다.
늘 “코치님”이라고 부른다.
운동이 시작되면
코치는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나는 배우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코치의 한결같음은 꽤나 인상적이다.
한결같은 성실함, 차분함, 듬직함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준다.
2년째 같은 크로스핏 박스에서 운동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코치와의 케미가 맞았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런데 또 다른 반전.
처음엔 그저 크로스핏을 잘 가르치는 코치려니 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대회에 나갔다 오기만 하면 1등 메달을 가지고 왔다.
처음은 그러려니 했는데 매번 그러니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매주마다 두세 번 만나 수업받는 코치가
국내 크로스핏 1위 여자 선수라는 걸.
국가대표로 해외 크로스핏 대회에 나간 적도 있으니
나는 국가대표에게 크로스핏 수업을 받고 있는 셈이다.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석 달 정도는 거의 다리를 절면서 다녔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난간을 붙잡아야 했고,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괜한 심통에 코치한테 시비를 걸었다.
운동 강도가 너무 센 거 같고 이렇게 운동하는 건 나한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를 째려보며 물었다.
“코치님,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거의 항의에 가까운 말투였다.
코치는 이런 나를 보며 해탈한 듯 웃었다.
나는 국가대표 크로스핏 선수에게
가르치는 방식이 맞냐는 투정을 부렸던 거다.
그런데 코치는 알고 있었던 거다.
내가 이런 과정을 거쳐야 다음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코치의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받으며
험난한 초급 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운동을 잘한다고 잘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잘 가르친다고 선수로 빛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스무 살 어린 나의 스승은
결이 다른 두 영역을 모두 잘 해내고 있다.
코치의 목표는
백 살이 되었을 때 버핏을 백 개 하는 것.
크로스핏을 하는 멋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그런 코치 옆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며 계속 묻고 있을 것 같다.
“코치님,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운동은
결국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된 것
그리고 그 길을 함께 할 훌륭한 스승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찾아온 꽤나 근사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