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기 전 바람 참 심하게도 부는구나 싶은 오후
빨래를 갠다
이상하게 날이 궃을수록 차분해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슬비 내리며 먹구름 낀 날
조용한 집에 귀를 기울이면
엄마는 고생했구나
빨래는 이미 내 손에 있고
설거지도 내 손에 있고
쓰레기도 내 손에 있는데
청소도 내 손에 있는데
그동안 많은 것들이 엄마에게 있었구나
오후 다섯시
빨래를 개며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를 떠올리다가
아직도 홀로 기다리는 아이를
반지하방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를
떠올린다
일곱 살 때도 여덟 살 때도 아홉 살 때
육 학 년 때까지 기다렸던 듯한데
돌고 돌아
서른이 넘어서도 기다린다.
반지하 방에 누워 뒤를 돌아보던 아이는
아파트에서 기다린다
애 같다 할 수 있겠지만
가끔은 ‘대학생이세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애 같아서 좋은 것도 있구나 싶고
빨래를 비 오는 날에 말리면
잘 말리지도 않고 꿉꿉한 법인데
반지하방에서 축축하게 커서
지금도 슬픔을 갖고 사나 싶다가도
근데 또 그게 나인 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
뭐라도 나라서 상관없어서
이런 나라도 만족한다.
빨래를 개다가 문득 떠올려보니
세탁기에 빨래가 있다
이번엔 널어야 하는구나
나도 같이 널려서
오늘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빨래랑 좀 같이 말리면
반지하방 아이도 그곳을 떠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