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단편소설

by 성운
단숨에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어.
너란 사람이 내게


개강총회와 한 주간 OT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대학의 새로운 상황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한 주의 기간은 완벽하게 적응하기 어려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피곤함보단 즐거움이, 어려움보단 새로움이 가득해 웅크리고 있던 자아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교정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오갔고, 개강총회에서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그녀와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에 살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행방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하루 본 사이에 그녀에게 연락해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부담으로 다가가 멀어지는 일이 일어나는 게 못 보는 것보다 더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주가 더 지나 맞이한 월요일은 아침부터 예감이 좋았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개운하게 일어났고, 개어놓은 티셔츠는 주름 없이 반듯했으며, 아무렇게나 말린 머리는 보기 좋게 깔끔했다. 착착 들어맞는 시작이 하루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밴드부 모집을 하는 날이었기에 긴장과 설렘으로 유독 떨렸는데 방을 나서기 전 울린 핸드폰 진동 알람이 더 떨리고 들뜨게 했다.

'오늘 밴드부 모집하는 데 갈 거야?'
그녀에게 온 메시지였다. 미리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무슨 어투가 적당한지 너무 고민이 되었다. 짧게 '응'만 하는 것도, 길게 구구절절 보내기도 어떻게 답을 해도 이상할 것 같았다. 강의실로 향하는 길 내내 고민했고, 1교시 강의 동안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2주의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온 연락이 너무 반가웠고, 무엇보다 먼저 연락이 왔다는 점이 소중했다.

그녀에게 답장을 결심 한 건 2교시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였다.
'응! 너도 가려고?'
너무 인색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텍스트라고 생각했다.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답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나도 가보려고 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럼 이따가 보자~'
그녀의 텍스트는 직접 얘기하듯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 문자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처음 봤던 그 밝은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성격이 텍스트에 그대로 묻어 나오는 게 내심 좋았다. 떠올렸을 때 분위기가 그려지는 사람이면서, 표현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생겨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더불어 기타를 좋아하는 나 자신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는 순간이었다.

밴드부 모집은 특이하게 동아리 방이 아닌 강의실 하나를 빌려 진행됐다. 수업을 마치고 오기에 조금 늦을 거란 그녀의 연락에 먼저 가 있기로 했다. 강의실 강단에는 누가 봐도 밴드부 사람들이라고 느껴지는 동아리 잠바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서있었다. 그들의 기세에 눌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책상에 앉았다. 혹시나 늦게오는 그녀가 옆에 앉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밴드부 선배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입부신청서를 작성하려는 찰나, 그녀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두리번거리던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고(바로 빠르게 내렸다), 그녀는 소중한 것을 찾은 듯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옆에 앉으며 물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니지?"
"아냐 아냐,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났어"
떨리는 손을 감추며 입부 신청서에 희망하는 파트는 기타, 좋아하는 밴드는 가라지, 데저트, 아웃번, 블루데이를 적었다. 그녀의 입부 신청서에는 이것저것 많이 적혀 있어 나보다 훨씬 밴드 음악을 많이 아는구나 싶었던 차에 가라지라는 3글자를 발견했다.

'너도 그 밴드 좋아해?'하고 묻고 싶었지만, 입부를 희망하는 삭막한 인원과 대화를 막 나누기도 어려운 어색함이 감도는 분위기였기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걱정과 달리 아는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그저 기존의 밴드부 활동이 이루어졌던 과정과 공연 계획을 듣는 게 고작이었다. 강의실에 앉아있는 입부를 희망하는 사람들도 크게 친해 보이진 않았기에 그나마 아는 얼굴인 그녀가 있는 게 마음 편하긴 했다. 무의미하게 펼친 노트가 안타까웠는지 그녀가 모퉁이에 느닷없이 끄적였다.
'재밌어?'
그녀를 닮은 듯 정갈하고 반듯하지만 밝은 느낌의 글씨체였다. 글씨를 멍하니 바라보고 갸웃하며 그녀를 쳐다보자 입모양으로 다시 '재밌어?'하고 물어왔다. 마침 밴드부의 연혁이나 활동 계획 같은 얘기엔 흥미가 떨어져 가던 차였기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나도'하고 싱긋 웃었다. 소리 없는 짧은 두 마디에 웃음뿐이었지만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은 직접적인 말보다 행동이 더 설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 학과 사무실 가봐야 해서 먼저 가볼게"
밴드부 활동 일정과 관련한 설명이 끝나자, 누가 봐도 분주해 보이는 눈빛을 하고 그녀가 다급히 얘기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녀는 항상 바쁘게 움직였고, 그래서 지나가며 보기가 어려웠겠다고 생각했다.
"응, 다음에 봐"
손을 흔들며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그녀는 긴 복도를 부지런히 걸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를 이대로 보내긴 아쉬워 마음이 붙잡으려 서성거렸지만, 워낙 바빠 보이기도 했고 부담이 되긴 싫었다. 천천히 스며들듯 다가가야지 생각하며 아마 같은 동아리에 있으면 친해지기도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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