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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Apr 14. 2023

다녀오겠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신카이 마코토)을 읽고>

 드디어 내일이다. 영어로 점자를 읽을 수 있다고 증명해 주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한동안 내 나이대의 평균보다는 공부에 집중했다고 자신한다. 유혹도 많았다. 어쩌면 일주일에 한 편의 브런치 글을 쓰겠노라 했던 다짐도 시험 기간에 더욱 즐거워지는 책상 정리와 같았을지 모르겠다. 당장 내일의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도 나와의 약속이란 핑계에 숨어 글을 쓰고 있잖은가? 하지만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가장 큰 원흉은 단 하나다. 신카이 마코토, 하필 이 시기에 신작을 내어 사방에서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시험을 보기 전에 아직 마음에 남은 여운의 갈무리를 짓기 위해서다.

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초속 5센티미터였다. 담담하여 시리도록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의 색감은 오롯이 감정적인 부분에서 청소년 관람 불가였다. 한동안 이 영화의 OST인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를 자주 들었다. 모르는 일본어를 흥얼거릴 정도였으니 가사를 중시하여 외국곡을 자주 즐기지 않던 나를 아는 이라면 생경하다고 했을 만했다. 그러니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은 내게는 첫사랑의 소식처럼 신작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 저릿한 기대감이 일게끔 만들었다. 이제는 빛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그의 색감을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니 아쉬움이 크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상쇄할 정도로 영화와 함께 발표하는 소설의 필력이 유려하다.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이 감독의 팬이라고 밝힐 수 있다.


 감독의 최근작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스즈메라는 고등학생이 잘생긴 대학생에게 첫눈에 반해 가출을 하여 지진을 막으러 다니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말이 되지 않는다. 허나 얼마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보니 스포일러가 걱정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이만큼 완벽하게 한 줄로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에 공감하리라. 애초에 내 마음에 남았던 위로를 밝히고자 했을 뿐이니 줄거리 소개는 이쯤 하자.


 "아뢰옵기도 송구하오나 하루라도 더 살고 싶습니다."


 스즈메는 묘하게 자신이 발붙인 세상에서 한 뼘쯤 떠있는 인물 같았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해 본 사람 특유의 염세주의였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나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사실 여전히 마음의 앙금이 남아있기도 했다. 인신공양의 대상이든, 재해의 생존자든, 후천적 장애인이든 집착해도 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끝내 받아들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놓아야 하는 대상이 삶에 대한 집착일 때도 있다. 나보다 이 세상에 의미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그가 더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 따위들 말이다. 수용이라는 단어 안에 포기나 체념으로 인한 슬픔이 도사리고 있으니 놓아버린 대상을 다시금 맞닥뜨리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살고자 하는 본능이라면? 끝내 누군가의 상실 앞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만큼 단단한 것은 없다.


 결국 삶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속된다. 작품 속에서 가장 안쓰러운 다이진은 다시금 얼어붙어야만 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여기에 있다. 이야기 속에서나마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속되어야 하는 사회의 구조 자체를 깨어주기를 바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즐거웠던 안식처가 산불에 타버리는 뉴스는 올해도 멎지 않는다. 기록을 위해 사연을 숫자로 변환하면 슬픔이 보이지 않아도 잠시 가려질 뿐이다. 우리는 모두 끝내 사라지지 않는 슬픔을 이 땅에 묻어둔 채 디디고 서있다. 아뢰옵기도 송구해하는 마음 가짐이 이 땅에 갸륵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오늘의 글은 특히 더 중구난방이었다. 어쩌면 앙금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해서였을까? 이 앙금이 흉터로 남아 평생토록 함께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집착이 되기는 어려운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한창 여운이 남은 지금은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다녀왔어.'라는 말을 끝내 전하지 못한 사연들이 슬프다고 '다녀올게.'라는 인사도 하지 못하랴? 스즈메가 이모의 집에서 나올 때처럼 말이다. 사정을 짐작할 수 있기에 어리석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웃으며 인사하리라. 잘 다녀오겠다고, 영어점역교정사 시험을 잘 보고 오겠다고,. 다음 주에도 브런치라는 이 공간에서 다시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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