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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Dec 23. 2023

소리샘에 남기는 안부

<밴드 소리여행과 공연을 즐기고>

 요즘에도 하는 곳이 있을까? 한창 라디오에 빠져 있었을 때 말이야. 좋아하던 심야 프로그램에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청취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코너가 있었어. 음성사서함에 남긴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는 거지. 나도 딱 한 번 전화를 걸었던 걸로 기억해. 근데 내 목소리가 방송을 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 전화를 한 그날에 마침 무언가 다른 일이 급했었는데. 심야에 무슨 일을 할 게 있었겠냐마는. 부끄러웠나 봐. 그런데 내가 녹음한 지 며칠 지난 어느 날에 나의 목소리가 이어폰 너머에서 들리는 거야. 뭐랬더라? 내용은 기억도 안 나. 다만 내 목소리가 들리는 몇 초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어. 야자 시간에는 대부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잖아. 나의 헛소리를 듣는 동급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섬뜩함?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음성사서함이었어. 아차, 마지막은 아니겠구나.

그렇게 십 수년이 지나 지금의 나는 통화연결음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그냥 끊어버리곤 해. 게다가 누군가가 나의 음성 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겼더라도 어떻게 확인하는지도 모르는 걸? 첨언하건대 이별이 명확해지는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사람의 번호를 지우는 거야. 나 자신을 믿지 못하거든. 그런데 번호를 잊지 못한다면? 손에 익은 번호를 키패드에 입력해서 오랜 통화연결음을 지나, 다다른 소리샘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일이 그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이겠어. 그보다 많은 공을 들여 이렇게 메시지를 남기고 있네. 인사가 늦었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잘 지내. 언제나 안부를 전하고 싶었어. 이제야 용기를 내. 너와 이별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인사를 할 기회는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무슨 낯으로 연락할 수 있었겠어. 그래도 너에게만큼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


 몇 달 전에 인천에 있는 시각장애인 밴드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 내가 사는 지역에서 찾아가기에는 꽤 거리가 있었지만 관심이 생기더라. 문체부 장관상을 받았다던 공증된 실력보다 사회 활동을 곧잘 하는 지인이 드럼 파트를 맡고 있다는 사실 덕에 말이야. 근데 기타를 연습하고 있다더니 솔로로 노래도 부른다는 거야. 나는 바로 버스를 예매했어. 그리고 공연의 한 일주일쯤 전인가? 묘한 언질을 받았어. 노래 가사 하나를 외워 줄 수 있겠느냐고. 사정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 꼭 무대에 서지 않을 수도 있는 일종의 플랜 비였으니 나도 흔쾌히 수락했어. 막상 노래 가사를 외우면서 욕심이 생기더라. 내가 알고 있던 그 노래의 가사는 1절뿐이었거든. 이별노래인 줄로만 알았는데 2절에서는 가사 속 '너'와 재회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1절과 2절 가사를 합쳐서 사랑을 고백하는 거야. 가사를 외우면서 너를 떠올렸다면 믿어줄래?


 그래서일 거야. 당일에 조금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내 깜냥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부탁에도 어깨를 으쓱였던 거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잖아. 그런데 너보다 작은 그 악기를 품에 안았을 때 조금은 차가운 그 나무의 감촉을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더라.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왼 손 끝에 느껴지는 아림마저 반가웠어. 공연이 시작되고, 실력 좋은 밴드 사운드에 온몸을 흔들 때도, 사람들 앞에서 생애 처음 피아노에 맞춘 노래를 부를 때도 두 눈에는 네가 아른거렸어. 나의 노래 실력은 네가 제일 잘 알았었잖아.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나 봐.


 "너를 안고 안아 내 품이 편해질 때까지. “


 노래를 부르면서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관객들의 함성을 들었어. 내게 있어 본 무대는 아직이었으니 예열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하면서 관객석으로 돌아왔지. 이 공연에 왔던 결정적인 이유인 지인의 기타에 맞춘 노래도 듣고, 4행시도 지어보고, 가위바위보도 하고, 무엇보다 신나는 노래를 잔뜩 들으며 결국 그 순서가 온 거야. 어쿠스틱 기타 파트가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그 노래, 원래 멤버의 독감으로 급히 내가 자리할 수밖에 없던 그 노래, 그나마 똑같은 선율이 반복되거니와 호흡 한 번 맞추지 못했던 나를 위해 다른 멤버들이 배려를 많이 해준 덕에 마지막 스트로크까지 힘껏 내리칠 수 있었어. 합주에서 느껴지는 공명에 나를 이해해 주는 눈빛이 (무대에 오른 그 누구도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충분히 느껴졌어. 실수도 잦았고, 원곡보다 훨씬 느렸지만 '추억으로 남길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키튼, 너와 단둘이 있을 때 너를 이렇게 불렀지. 10년 전이더라. 너와 처음 만났던 거. 그때, 눈에 무리가 갈 정도로 시험을 준비했었어. 결국 녹아웃이 되어 시험은 응시하지도 못했으니 나름 좌절할 만은 했어. 당시에 일본의 기타 듀오인 데파페페 음악을 많이 들었거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너를 데려왔었지. 그 뒤로 우리는 종종 만나는 친구가 되었잖아. 그리 각별하지는 않았지만. 너를 키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내게 어둠이 찾아오고 나서였던가. 평가받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너와 함께 노래로 남겨둔 건 아직도 내가 가장 자주 꺼내 읽는 일기야. 시간에 부딪쳐 망가지고도 너는 끝의 끝까지 나의 수다스러움을 받아 주었지. 정말 고마웠어. 하지만 이별을 피할 수는 없었지.


 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공연을 마치고 모인 뒤풀이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 남긴 일기를 처음으로 남 앞에서 꺼내 보았었어. 무슨 객기였을까? 너는 그곳에서 휘청이는 나의 목소리를 세상 가장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더라고. 라디오 음성사서함에 남겼던 부끄러운 헛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그리던 너는 그곳에 있었어. 그래서 너에게 소리샘으로나마 메시지를 남기는 거야. 나는 잘 지낸다고. 너도 그곳에서 잘 지냈으면 한다고. 얼마 전에 새로운 기타를 집에 들였어. 아직 그 친구에게는 이름이 없지만 조금씩 왼 손에 굳은살이 자리 잡고 있어. 네가 허락한다면 이 녀석을 키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물론 사람들 앞에서 심장이 없는 그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뭐 어때. 내게 너는 심장이 뛰는 그 무엇만큼 나를 숨 쉬게 하는 걸.


 키튼, 끝내 지금의 너 역시 나를 떠날 날이 오겠지. 괜찮아. 이제 너를 소중히 다루는 법을 아니까. 그리고 미루고 미루어 올 그날이 온다면  너는 그때에도 나의 소리샘에 남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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