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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 번 더 들어주지 뭐?

by Ding 맬번니언


트램 바퀴가 레일 위를 스치며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지만, 이제는 저에게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나는 승객들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하루하루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멜버른 대학교 종점에 도착했다.

"금요일 근무 변경 가능할까요?" 종점에 도착하자 핸드폰이 짧게 진동하며 문자가 도착했다.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는 단출했지만, 그 안에는 부탁과 기대, 그리고 나의 고민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번 주 목요일에도 이미 그의 부탁으로 근무를 바꿔줬다. 사실, 그가 나에게 근무 변경을 요청한 것은 내가 그에게 부탁한 것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늘 성실했고, 함께 일하며 도움을 주고받은 동료였다. 평소 그가 보여준 배려와 진심을 알기에, ‘이번에도 들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스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문자에 바로 답장을 보내기가 어려웠다. 트램은 정해진 트랙을 따라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앞 트램을 따라가는 긴 여정은 나의 시간을 점점 늦추고 있었다. 이런 날은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다. 일정에 쫓기며 운전석에 앉아 있는 동안, 미안함과 망설임이 뒤섞인 감정이 서렸다. 그러나 단순한 미안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답해야 할까? 아니, 스티븐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기다리는 게 맞겠지.'

스티븐은 이번 주에 골드코스트에 가야 한다. 그의 부모님이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 스티븐은 일정이 확정되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만약 스티븐이 계약일을 금요일로 잡는다면, 근무를 바꿔주겠다고 섣불리 답했다가 서로의 일정이 꼬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트램은 정해진 시간보다 늦었다.


트램은 여전히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규칙적이지 못했다. 핸드폰 화면에 남아 있는 짧은 문장은 마치 ‘대답해 줘’라며 나를 재촉하는 듯했다. ‘이번에도 들어주자’는 마음과 ‘이번만큼은 기다려야 한다’는 이성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위해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더 직접적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혹시 금요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도 근무 변경이 가능할까요? 도움이 필요하네요" 순간, 나는 당황스러움에 숨이 턱 막혔다. 이번에는 단순한 하루 교대가 아니라, 무려 5일간의 근무 변경을 요청하는 문자였다. 예상치 못한 부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여러 생각이 뒤엉켰다.


‘어쩌지...?’ 3월부터는 나도 새벽 근무를 시작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자를 받고 회사 시스템에서 내 근무 일정을 확인해 보니, 아직 변경 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여전히 기존의 근무표가 그대로 떠 있었다. ‘이거, 왜 아직 그대로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화면을 몇 번이고 새로고침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분명히 3월부터 새벽 근무로 조정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시스템에는 그대로일까. 순간 불안감이 스쳤다. 혹시 내 일정이 누락된 건 아닐까? 아니면 변경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걸까? 마음이 점점 복잡해졌다. 만약 변경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 나도 언제부터 새벽 근무를 시작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불안하게 기다려야 한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한 번 더 들어주지 뭐’ 하고 쉽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동안 그는 여러 번 나에게 부탁했고, 나도 웬만하면 그의 요청을 들어주며 협력해 왔다. 그래야지 내가 필요할 때 그도 나의 요청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의 부탁도, 나의 상황도 모두 얽히며 혼란을 더 키우는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망설임과 미안함, 그리고 불안함이 뒤섞여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내일은 꼭 회사에 가서 내 근무 일정을 담당자에게 확인해야겠다. 언제부터 새벽 근무가 시작되는지.’ 그의 요청을 무작정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확실한 정보를 알아야 했다. 내 근무 일정부터 명확히 파악한 뒤, 그에게 이 사실을 전하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래야지, 그도 나 말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스티븐이 일요일에 골드 코스트에 간다고 하니 금요일 근무는 변경해 주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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