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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을 떠나 호주에 사는 결정적인 이유

"당신이 이 사람을 안다고? 증명해봐"

by Ding 맬번니언

202016년 9월 28일2016년 9월 28일2016년 9월 28일

2016년 9월 28일 과거 이야기


한국에 있을 때 게이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사진을 올렸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아는데 내가 게이가 아니라는 댓글을 올렸다.


댓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며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인가?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나를 아는 사람이면 내 지인이나 친구, 내 주변 사람에게 내가 게이라고 아우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 상상하기 싫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말을 걸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이 이 사람을 안다고? 증명해봐"


그러자 그 사람이 내 싸이월드 사진을 올렸다. '정말이다. 이 사람은 날 알아.' 나는 당장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운영자는 직접 그 사람과 내가 만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주선해주었고 나는 약속 장소에서 그 사람을 보고서야 왜 그가 날 안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훈련병이던 시절 우리 큰누나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군 간부를 통해 훈련병인 나한테 냉동식품을 사주기도 하고 집에 전화를 걸게 해주기도 했다. 지금의 군 문화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 그건 엄청난 특혜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큰누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래서 누나와 그 사람이 만난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랐었다.


" 야~ 너 진짜 게이였구나 난 전혀 상상도 못 했어~ 이럴 줄 알았음 내가 한번 따먹을걸~"


그 한마디를 내뱉고 그 사람은 나가버렸다. 덩그러니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이 방금 전 한 말을 떠올렸다. ‘따먹을 걸이라니.. 내가 무슨 과일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너무 갑자기 큰 충격을 받으니 황당함과 충격이 동시에 몰려와 제대로 대꾸도 못 한 체 그냥 보내버리고 말았다.


그때 당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두 사람은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게이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 아니냐고? 아니, 가족의 압박 때문이든 자신의 의지이든 실제로 게이임에도 이성애자인 것처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사람은 꽤 많다. 나도 내가 게이임을 안 이후에 착한 아들, 동생으로 살고 싶은 생각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시도를 안 한것도 아니다.



'사랑하지는 않아도 좋은 남편인 것처럼 속이고 살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그 사람과 큰 누나를 떠올려보았고 다른 누구보다 큰누나가 그런 사람과 결혼해 평생을 거짓으로 덧씌워진 결혼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도저히 다른 여성분께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큰누나를 포함해 세상 누구든 자신을 사랑하고 진실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자격을 갖고 태어날 텐데 내가 그 진실을 감추고 속이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게이가 아닌 척 이중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

한국은 내게 가면을 쓰고 거짓말의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과 같다.


누군가를 속이고 상처를 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면 설사 내 거짓말을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에 어학연수를 핑계로 도망치듯 호주로 떠났고 큰누나와 그 사람과 관련된 일을 터놓을 새도 없이 사이는 멀어졌다. 그런데 다시 거짓말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오다니 정말 아이러니했다. 이번 한국 일정에서 내가 할 거짓말은 행복이에 관한 것이다.


엄마는 내가 호주 와이프와 결혼해서 행복이가 태어난 걸로 하자고 했고 나는 엄마의 말에 따르겠다고 약속을 했다.


‘친척들에게 한 번만 소개시켜 주면 되는 일이니 엄마 뜻대로 하자.’ 라고 생각했다. 나는 호주에서 호주인으로 살아가겠지만 계속 한국에서 살아갈 엄마를 위해 참겠다고 생각했다. 행복이가 막 태어나 내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엄마가 태국까지 날아와 주었던 것처럼 나도 엄마를 위해 힘든 걸음을 걸어드리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게이임을 안 그 날 이전까지 엄마가 나에게 보여주셨던 사랑과 헌신적인 모습, 그리고 이유가 어찌 되었든 보답 한 번 하지 못하고 떠났다는 그 어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죄책감, 그 중 어떤 것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까?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그 후로 남은 한국 일정 동안 가족들이 원하는 말을 하고, 원하는 행동을 하고, 가자는 데로 가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호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행복이를 끌어안고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 내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울분을 삼켰다.




이걸 다 삼키고 나면 다시는 내뱉지 않으리라.

다시는 행복이와 관련된 어떤 것도 감추거나 거짓으로 덮지 않으리라.

행복이에게, 그리고 세상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리라.




가슴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앞으로 엄마와 가족들은 내내 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호주에서 외국인 여자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고 잘살고 있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내 인생의 진실은 모두 호주에 있고 앞으로도 행복이와 함께 살아갈 테니 괜찮다고 되뇌였다. 내 옆에는 한국가족들이 잘못된 것이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스티븐이 있고 내가 평생 지켜야 할 행복이가 있다.


"잘못 낳아서, 잘못 길러져서 우리가 게이가 된 게 아니야. 우리는 게이로 태어난 거야. 나는 조슈아와 소피아를 정말 많이 사랑하지만 내 성 정체성을 더 먼저 깨달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


사회가 게이에게 조금 더 오픈된 상태였다면 훨씬 게이로 살기가 편했을 것이고, 게이는 게이답게 살아도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서 우리가 겪었던 것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게이로 태어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듯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옳은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일부러 버리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스티븐의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졸업”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는 것처럼 한국 가족으로부터 졸업하고 새로운 호주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이 글이 나의 졸업일기이자 앞으로 다닐 학교에 입학 소감문이자, 내 인생에 대한 가장 진실된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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