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휴가

by Ding 맬번니언

첫날 푸껫의 밤이 깊어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그런데 비는 밤새 멈출 기미가 없더니, 아침을 지나 점심이 되어서도 여전히 창밖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푸껫에서 보내는 느긋한 일정에 어울리는, 조용하고 축축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비가 오기 때문에 밖에 활동이 제약이 되어 스티븐은 호텔에 머물며 밀린 업무를 처리했고, 행복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게임 속 세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이 시간을 온전히 나 자신에게 주기로 했다.

비 오는 날, 느릿한 음악이 흐르고 따뜻한 손길이 닿는 마사지만큼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것도 없기에 나는 ‘네이버 폭풍 검색’에 나섰다. 그렇게 찾은 곳은, 우리 호텔 근처에 위치한 ‘오아시스 마사지’샾이다. 무료 픽업까지 된다는 정보에 망설임 없이 예약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호텔 로비에서 차를 타고 이동한 마사지샵에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몸은 풀리고, 마음도 잠잠해졌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기적처럼 비가 멈춰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말없이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푸껫의 오후 햇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비가 막 그친 수영장에는 잔잔한 물 위로 빗방울이 남긴 흔적이 조용히 퍼지고 있었고, 그 위에 우리 셋의 가볍고 나른한 웃음이 은은하게 섞여갔다.


스티븐과 행복이는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며 물장구를 치고, 장난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조금 떨어진 선베드에 누워 조용히 책을 펼쳤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책장이 넘겨지는 소리와 수영장 물살 부딪히는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의 그림자등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휴가도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 하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꼭 무언가를 보고, 찍고, 이뤄야만 여행이 되는 게 아니었다.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가장 값진 여행이 되는 법이었다. 나는 비가오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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