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 순간이 지나간 후 감정을 가라앉히고 조슈아를 이해해보려고도 해봤다. ' 내가 조슈아였다면?' 아는 척을 했다면 친구들이 분명 누구인지, 어떻게 아는 사람인지 물어봤을 것이고, 자신의 아빠가 이혼 후 게이로서 게이와 결혼을 했고 그래서 함께 살게 된 가족이라고 말해야 할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수많은 고민이 들어 혼돈스러움에 그냥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랬 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슈아와 다정한 저녁
내가 내 입장에서 내 인생을 설명하기는 쉬워도 아직 어린 조슈아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에 어렵고 힘든 부분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어른으로서, 어른의 사정으로 큰 환경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조슈아는 힘들었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한참을 앉아서 내 상처와 슬픔을 가라앉히고 조슈아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다시 집에서 얼굴을 마주쳤을 때 낮에 벌어진 일을 빌미 삼아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조슈아의 18번째 생일 파티를 직접 코스튬 파티로 준비해 열어 주며 그 일은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지나가버렸다.
‘ 그 후 조슈아가 21살이 되었다.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의 일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브라이튼으로 이사온 일 정도일까? 조슈아는 우리가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한 12살 때도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방 청소하나 하지 않으며 가족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거실, 화장실, 주방 같은 공간을 치우거나 정리하는 일도 없다. 조슈아가 하지 않은 집안일은 여전히 내 몫이었으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조슈아에게 강제로 집안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너무 어릴 때에는 조금 크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20살이 되어갈 즈음부터는 어짜피 곧 독립해 나가고 나면 내 일이 될 터인데 괜히 이제와 시키면서 충돌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브라이튼에 오면서 계속 같이 살게 되면서는 이제와 하라고 하기엔 너무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워낙 행복이를 돌보기 시작한 후로 내 일로 바빴던데 다가 행복이에게도 잘해주는데 아기 때 밤낮없이 우는 행복이 때문에 ‘조슈아도 불편할 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 때문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기가 우는 게 부모의 탓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막상 행복이가 울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봐 눈치를 보게 되고 미안한 마음이 생겨나 마냥 강하게 나설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9년의 시간 동안 집 안에서 일어나는 조슈아와 관련된 일에 나는 늘 양보와 배려의 태도를 가지고자 노력하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슈아가 여자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서 온 집안에서 소리가 다 들리도록 섹스를 했다. 물론 성인이고 여자친구가 있는데 하지 말아야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집안에서 누구도 배려하지 않고 소리가 울릴 거라는 걸 알면서 했다는 것에 나는 놀랐고 너무 화가 났다. 더군다나 행복이가 요즘 말을 알아듣고, 또 따라 하려고 하는 시기라 주변에 관심이 많은데 이런 조슈아의 행동이 행복이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같이 느껴졌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조슈아가 어쩌면 내가 어디까지 자길 참고 맞춰줄 수 있는지 시험하려 한다거나,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런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리여행 일이 터진 것이다. 발리 여행이 하나의 스모킹건이 되어버린 듯 모든 그간의 인내와 힘들었던 시간들이 그 여행을 기점으로 내 안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화로 풀어나가려했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단지 행복이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데드라인을 선언했다.
" 더 이상은 조슈아와 함께 살 수 없어. 조슈아가 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행복이와 한국으로 돌아갈거야."
스티븐을 만난 후 지난 10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지를 스티븐에게 말했다. 몇 번이나 조슈아와 함께 사는 일로 의논했을 때 나는 늘 스티븐의 의견에 따라주었고 함께 살면서 일어났던 모든 문제와 내가 감당해야 하는 수고로움에 대해 주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물러설 수 없다고 확신했기에 내 의견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스티븐이 이번에는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조슈아는 이사를 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