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아주 즉흥적으로 내릴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주말 동안 스티븐은 시드니로 출장을 떠났고, 우리는 1시쯤 세비네 집에 방문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계획이 바뀌었다. 이유는 세비가 아니라, 다니엘 형이 키우던 차우차우가 갑자기 아파 응급실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비만 천만 원이 들었다.
아침부터 동물 응급실을 전전했을 그들을 생각하니, 저녁을 준비해서 힘든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해물탕과 삼겹살로 저녁상을 차렸다. 따뜻한 국물과 고기가 식탁 위에 오르자,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애완동물, 아니 가족 같은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내가 45년을 살면서 내 옆에 많은 반려동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 깊이 남은 아이는 ‘대박’이었다. 행복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주에서 나는 폼스키 한 마리를 입양했다.
그녀와 짧은 4년 동안 정말 정성껏 돌봤다. 나는 매일 그녀를 산책시키고, 아침마다 나를 보고 인사해 주는 대박의 눈빛에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4년이 되던 해, 그녀가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수술을 시켰고, 온 가족이 힘을 모아 그녀를 간호했다.
하지만 6개월 뒤, 대박은 끝내 내 곁을 떠났다. 2022년, 그녀의 마지막 날. 나는 그녀를 위해 작은 장례식을 열어주며 조용히 작별 인사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말이다. 대박이와 정이 깊은 만큼 상처도 깊었고, 그 무게를 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3년이 흘렀다. 행복이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 골든 레트리버 키우면 안 돼?”
행복이 때문에 1년 넘게 고민하고, 관련 책도 읽고, 동물 보호소 영상도 찾아보던 아이였다. 그 진지한 눈빛 앞에서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두 번째 반려동물을 맞이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준비되어 있던 선택처럼 그 결정은 빠르게, 그러나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우리에겐 이제 2주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배우게 될까? 상실 이후에 다시 마음을 여는 일이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용기 있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보다 행복이가 마스터가 되기로 했다. 나는 그런 행복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행복이는 강아지의 이름도 벌써 지었다. 치카라고 말이다. 행복이 만큼 내가 그녀를 사랑을 해줄지 모르겠다. 나의 감정 변화다 지켜볼 생각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