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의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고, 해가 났다 비가 왔다 하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한 계절 안에서도 사계절을 모두 경험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외출했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선선해서, 오히려 걸어 다니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이런 날이 며칠만 이어졌으면 했는데,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창밖에는 잔뜩 흐린 구름이 끼어 있었고, 차가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공기마저 싸늘해졌다. 마치 가을도 건너뛰고 단숨에 겨울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패딩을 꺼내 입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날씨였다. 하필이면 그런 오늘 행복이의 축구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솔직히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TV로 보는 것도 흥미가 없는데, 쌀쌀한 날씨에 바깥에서 서 있어야 하는 건 더더욱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진 날에는 몸도 마음도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를 연습장까지 데려다주고는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마시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습장에 도착하자, 행복이가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오늘 연습 경기 하는데 좀 봐주면 안 돼?”
그 한마디에 나는 멈춰 섰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오늘은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추위를 핑계 삼아, 혹은 일이 있다고 둘러대며 돌아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아빠가 봐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 아무 말 안 해도 느껴지는 그 바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는 기쁜 표정으로 연습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아이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아이는 온몸을 써서 공을 쫓고, 팀원들과 소리치며 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편함보다 뿌듯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사실 나는 아이가 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아이의 관심사 중엔 내 취향과는 전혀 다른 것들도 많고, 어떤 활동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런 '싫음'의 감정을 꾹 삼키고,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보는 것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니까 하는 일 말이다. 이것이 어쩌면 부모가 되는 일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끝은 얼얼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따뜻했다. 내가 아이에게 해준 작은 응원 한 조각이, 언젠가 아이에게는 든든한 기억으로 남아줄 거라 믿으며, 오늘도 그렇게 나는 '싫지만 해내는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아이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잘하지 못해도 응원하고, 그 자리에 있어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예전에는 솔직히 아이가 무언가를 잘 해낼 때만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잘하면 칭찬해 주고, 성과가 보이면 더 기꺼이 지지해주곤 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깨닫고 있다.
정작 아이에게 더 필요한 건, 잘하지 못할 때에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도, 실수하고 주저앉아도,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괜찮아, 그래도 아빠는 널 응원해”라고 말해주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금, 그것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