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선생님한테 자기 아빠가 폭행한다고 신고

by Ding 맬번니언

세 명의 아빠가 있다.
A는 전형적인 동양 스타일. 아이들은 그의 눈치를 본다. 아빠의 말은 곧 법이다. 기분에 따라 기준이 바뀌지만, 감히 반항은 없다.


B는 전형적인 서양 스타일. 아이들은 자유롭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논다. 아빠는 친구 같고, 때로는 그냥 배경처럼 느껴진다.


C는 원칙 중심의 아빠다. 규칙은 있지만 일방적이지 않다. 아이도 그 룰을 만드는 데 함께 참여한다. 규칙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다. 책임 있는 자유가 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아빠는, 호주라는 땅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어젯밤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스티븐이 방으로 들어왔다.

"급한 얘기 좀 해야 해."
피곤한 몸을 일으키자, 그는 낮에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를 만났는데… 그 집 아이가 학교 선생님한테 자기 아빠가 폭행을 한다고 말했대. 학교는 그걸 아동복지 기관에 신고했고, 지금 그 집은 난리야."

충격이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A, B, C 중 누구의 아이였을까?


A 집안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 정도일까. 가끔 우리 가족이 함께 어울릴 일이 있을 때면, 나는 그 집 아이들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낀다. 가끔은... 솔직히 말해 부럽다. 아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네!" 하고 반응하는 모습.

정말로 잘 훈련된 듯 움직이는 모습. 식사 자리에서도, 마트에서도, 심지어 놀이터에서도 아빠가 눈짓 한 번 주면 움직이고, 아빠가 말하면 다투던 것도 순식간에 멈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무심코 내 아이를 돌아보게 된다. 아직도 설득하고, 설명하고, 타협하고, 때로는 감정을 누르며 싸워야 하는 나와의 일상이 떠오른다.

‘어쩌면 저게 맞는 걸까?’
‘나도 저렇게 하면 아이가 훨씬 더 편하게 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들과 조금 더 오래 있다 보면, 또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눈치를 보는 아이들. 말끝을 조심하는 아이들. 무언가를 하려고 하다가도 아빠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그 작은 시선. 순종적인 것처럼 보였던 그 행동들 뒤에는, 아빠의 기분을 읽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아이들의 마음이 있었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시려온다. 아빠의 말이 곧 법이라는 세계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과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B 아빠는 전형적인 서양 스타일이다.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규칙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운다”는 철학 아래,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자유롭고, 숙제도 하고 싶을 때 한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건 물론이고, 때로는 아이의 말이 부모의 말보다 먼저 반영되기도 한다. 나는 처음에 B 아빠의 방식이 낯설고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아빠는 그걸 제지하지 않으니까 상황이 복잡해질 때도 많았다. 식당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친구 집에서 아무 때나 냉장고 문을 열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움도 있었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무엇보다 아빠와 아이 사이에 거리감이 없다는 점. 그건 분명히 B 아빠의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 자유가 아이를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준이 없다는 건, 아이가 세상 속에서 스스로 중심을 잡기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무한한 자유 속에 작은 외로움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C 아빠는 규칙이 있는 집을 만든다. 하지만 그 규칙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와 함께 정하고, 함께 지킨다.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답답할 만큼 느릴지 몰라도, 점점 아이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놀라운 건, 규칙이 있다는 게 오히려 아이에게 자유를 준다는 점이다. 어떤 행동이 허용되고 어떤 것이 안 되는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 C 아빠의 아이는 "안 돼!"라는 말을 자주 듣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될까?”를 함께 고민한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눈엔 여유가 있고, 실패 앞에서도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C 아빠와 대화할 때마다 부모가 ‘지휘자’가 아니라 ‘동행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낀다.


권위는 내려놓았지만 중심은 잃지 않고, 아이에게는 선택의 자유와 책임의 감각을 동시에 가르친다.

가끔은 그렇게 사는 게 너무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가정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시간이 많이 들고 인내심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의 모습을 C 아빠에게서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아빠도 더 성숙해지는 집으로 말이다.


예상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아빠를 신고한 아이는 B형 아빠밑에서 자란 아이다. B형은 동양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으면 부모님을 따라 호주로 이민 와서 호주에서 성장한 이민 2세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형적인 동양스타일보다는 서양스타일로 아이를 키웠다.전형적인 동양 스타일이 싫어서 말이다.하지만 생각보다 아이가 자신의 말을 안 듣고 너무 멋대로 해서 정말 살짝 체벌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놀라서 그런 행동을 한 것 같다. 나는 A형 밑에서 자란 아이가 그럴 줄 알았는데 이번일을 계기로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부모는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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