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티븐 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표면적인 목적은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지만, 사실 나의 생일 파티는 어제까지로 충분히 마무리된 상태였다. 그래서 주말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 하고 싶은 것을 대신 그분들을 위한 배려의 자리였다.
스티븐의 부모님은 서양 음식을 즐기시고, 동양 음식은 썩 좋아하시지 않는다. 아마 한국의 어르신 들은 반대 일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서양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골드 코스트에서 오셨기에 바닷가가 보이는 식당으로 장소를 정했다. 비록 이곳이 골드 코스트는 아니지만, 식탁 너머로 펼쳐진 바다 풍경이 그리움을 잠시나마 덜어드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식사 중, 스티븐의 어머니는 내게 다섯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셨다.
"오늘이 네 생일 맞니?"
처음엔 웃으며 답했지만, 반복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억력이 눈에 띄게 약해지신 것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이전부터 스티븐에게 여러 번 말했다.
“정밀한 검사 한번 받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가족들 모두가, 그저 "원래 그렇지 뭐" 하고 넘기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고,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난다. 매일 반복되는 질문, 틀린 기억, 흐려지는 현실감. 그런 변화들을 가족이 가장 먼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 행복이는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아마도, "아빠, 우리 병원 한번 가보자"라고, 용기 있게 말해주지 않을까. 나는 내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할 말을 하는 아이로 키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말을 듣고 기꺼이 병원에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게 진짜 가족이니까.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그게 가족이어야 하니까. 스티븐도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말했다.
오늘은 나보다 스티븐 부모님이 훨씬 더 좋아하신 하루였다. 그분들이 음식을 드시며 기뻐하고, 바닷가 풍경을 보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나는 항상 같은 곳보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경험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들도 누군가의 따뜻한 보살핌과 관심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연세가 들수록, 그런 배려는 더 간절하고 소중해지니까.
주말에 마음껏 사랑을 받으니 여유가 생기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배려받고 누군가를 배려하는 삶은 행복하다. 그러니 사랑받고 사랑하자.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