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겪고 싶지 않은 하루였다. 아들의 ADHD 약이 이제 열 알 정도 남았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두고, 큰 생각 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평소라면 미리 준비했겠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친 것이다. 쉬는 시간에 회사 근처 약국에 들러 약을 구입하면 되겠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약사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약국엔 재고가 없네요.”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아이의 약이 떨어지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다행히 내가 들른 곳은 체인 약국이었기에, 약사는 다른 지점들을 조회해 주었다. 하지만 결과는 한숨이 나왔다. 한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단 한 곳, 재고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혹시 모르니 개인 약국에도 들러보라고 권했지만, 그때 이미 마음속에는 불안과 긴장이 차올랐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 하루는 오롯이 아이의 약을 찾아 삼만리를 떠도는 여정이 되어버렸다. 우리 동네 약국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재고가 없었다. 어떤 약사는 의사에게 처방을 바꾸라고 했고, 또 다른 약사는 용량을 줄여 복용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저 당장의 편의가 아니었다. 아이가 매일 안정적으로 약을 복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ADHD 약은 감기약이 아니다. 마음대로 약을 바꿀수 없는데 약사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혹시 몰라 집에 남은 약을 살펴보니 10mg짜리 소량은 있었지만, 지금 아들에게 꼭 필요한 30mg 약은 동이 나 있었다. 이 순간 나는 아빠로서 선택을 해야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라도, 기꺼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약국으로 가야 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귀찮더라도, 내 아들을 위해서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아빠의 삶은 결국 이런 것 아닐까. 나를 위해서는 쉽게 포기할 일도, 아이를 위해서는 끝까지 해내야 한다. 나의 하루가 아무리 지치고 고단해도, 아이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밤을 지켜주는 것이 아빠의 몫이다. 오늘 나는 그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돌아보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 희생은 결코 억울하거나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웃음을 떠올리면 그 어떤 여정도 가치 있게 느껴진다. 오늘 나는 긴 하루 끝에 땀에 젖은 몸으로 차에 올라탔지만, 마음속엔 오히려 묘한 뿌듯함이 자리했다. ‘그래, 이것이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이자, 동시에 특권이구나.’
오늘 약을 찾아 떠난 이 여정은 단순히 약 한 통을 손에 넣기 위한 발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빠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길이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언제든 길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길 끝에서 아들의 안정된 눈빛과 평온한 미소를 볼 수 있다면,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
그리고 끝내 약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웃픈 것은 상황이 이런데 어떤 약품은 처방전이 있어도 더 많은 약을 구입할 수 없다. 최소한 9월 8일까지 다음 약구입을 기다려야 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