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몇몇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아마도 힘없는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크고 작은 방식으로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 시절의 나는 약했고, 강한 아이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저 피하고만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에 한 가지 갈망이 생겼다. “나도 강해지고 싶다.” 피해를 경험한 남자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강한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오늘, 나는 행복이 학교 미팅에 다녀왔다.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행복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 아이를 괴롭혔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속에서 보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아이가 원해서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괴롭힘은 피해자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어릴 적 그 자리에 서 있었기에,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행복이는 나와는 정반대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운동을 잘하고 힘이 센 아이들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일진’은 아니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강한 그룹에 속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늘 약한 아이들이 있다. 나는 그 약한 아이 중 하나였고, 그래서 오늘 들은 이야기가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의 아들이, 내가 한때 가장 두려워했던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충격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동시에, 피해자가 아니어서 안도하는 마음이 스치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행복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장난이 점점 커져 괴롭힘이 되어 버렸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주도한 건 아니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주도했든, 뒤따랐든 중요한 건 결과다. 너의 선택이라고 말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의도나 상황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상처만 남는다.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더욱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행복이에게 말했다. 주도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아이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운동 잘하고 힘센 아이들이 모두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강함은 힘을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사람이 약자를 지켜낼 때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 남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행복이가 그런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약자를 괴롭히는 힘센 아이가 아니라, 약자를 도와주는 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과거의 상처 속에서 배운 유일한 교훈이자, 아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삶의 방향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