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쳐 쓴다, 못 쓴다. 이런 말로 싸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질은 바꿀 수 없다. 그건 나를 봐도, 아들 행복이를 봐도 그렇다. 타고난 성격은 DNA처럼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진 본능이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루틴이다. 나는 그것을 아들을 키우면서 배웠다. 행복이가 아기였을 때, 나는 하루를 철저히 루틴에 맞추어 살았다. 정해진 시간에 분유를 주고, 정해진 시간에 낮잠을 재우고, 정해진 시간에 목욕을 시켰다. 그렇게 리듬을 만들자 신기하게도 모든 게 편해졌다. 아이도 안정되고, 나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서 루틴이 내가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루틴은 내 삶의 질서를 만드는 언어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새벽에 눈을 뜨고, 치카에게 밥을 주고, 산책을 하고, 출근하고, 글을 쓰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늘 비슷한 하루지만, 그 안에 나만의 평화가 있다. 루틴은 나를 단조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되돌려 놓는 힘이었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을 바꾸지 못하지만, 루틴을 통해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루틴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더 나은 나’로 이끌어 준다.
루틴은 나에게 질서였고, 평화였다. 하지만 행복이를 키우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루틴은 누군가에겐 안정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구속일 수도 있다.
나는 하루의 흐름이 깨지는 걸 싫어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것 그게 나를 지탱시켜 왔다. 그런데 행복이는 완전히 다르다.
그의 하루는 예측 불가능하다. 아침엔 웃고, 오후엔 울고, 저녁엔 다시 에너지가 폭발한다. ADHD를 가진 아이답게 하루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다. 나는 그 속에서 종종 나의 루틴을 잃는다.
처음엔 아이를 내 리듬 안에 넣으려 했다. ‘이 시간엔 공부, 이 시간엔 식사, 이 시간엔 잠자기.’ 하지만 현실은 늘 계획표를 비웃듯 흘러갔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아이를 루틴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루틴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행복이의 하루는 내 루틴을 흔들지만, 그 속에서 나는 유연함을 배우고 있다. 루틴이 완벽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깨지는 순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기회가 숨어 있다.
루틴이란 결국 삶의 리듬을 맞추는 음악 같다. 어른과 아이가 다른 템포로 살아가지만, 가끔은 한 박자 느리게, 가끔은 한 박자 빠르게 서로의 리듬에 맞춰보는 것 그게 진짜 조화 아닐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