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행복이는 요즘 매주 토요일마다 테니스 대회에 나가고 있다. 그걸 위해 나는 새로운 라켓을 사주었고, 오늘은 직접 테니스 코트를 빌려 행복이와 함께 공을 쳐 보았다. 나는 단 한 번도 테니스를 배워 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완전한 초보다. 내가 기술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아이 곁에 있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둘이 함께하는 시간은 내 마음을 따뜻해질 줄 알았다. 새 라켓을 쥔 행복이와 내가 테니스 코트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
햇살은 부드럽게 내리고, 행복이는 라켓을 들고 활짝 웃는다.
나는 “행복이 정말 잘한다, 좋아! 다시 한번 해보자!” 하고 격려하고, 행복이는 “아빠, 나 이렇게 잘하게 되었어!” 하고 자랑스럽게 웃는다. 볼을 주고받을 때마다 우리 사이에는 작은 에너지가 오가고,
가끔 공이 엇나가면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이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웃음을 터뜨린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코트 위에 길게 드리워지고, 그 그림자마저도 우리 둘을 응원하는 듯했다. 나는 오늘 그저 행복이를 위해 움직였고, 그 결과는 따뜻한 추억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코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상과 달랐다. 나는 테니스를 배워본 적도 없고, 공을 제대로 보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행복이는 새 라켓을 들었지만, 피로와 긴장, 그리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엉켜 있었다. 공이 자꾸 밖으로 나가고,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행복이는 내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때마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아빠, 그렇게 치면 안 돼요…”라고 했다.
나는 당황하고, “솔직히, 너도 제대로 못 치잖아!”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순간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웃음 대신 불편한 정적이, 격려 대신 서로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말들이 오갔다.
나는 ‘잘해줘야 하는데…’라는 마음과 ‘나는 왜 기본도 못하지?’라는 초보자로서의 초조함이 섞여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행복이는 행복이대로 화가 나서 나는 나대로 서툰 모습이 부끄러워 서 결국 상상 속의 부드러운 장면은 현실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코트에서 걸어 나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바라는 그림과 아이와 함께 만들어지는 현실의 그림은 언제나 다를 수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기대한 ‘따뜻한 부자 테니스 시간’이 꼭 그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니었다.
서툴러도, 조금 다투어도, 그 코트에서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 자체가 이미 중요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 현실을 통해 나는 또 한 발 부모로 성장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