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소피아의 결혼식 날이다.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을까. 멜버른의 하늘은 유난히도 과했다. 기온은 40도를 훌쩍 넘겼고, 공기는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다. 그리고 소피아는 클래식한 결혼식을 원했다. 그 말은 곧, 우리는 40도가 넘는 날씨에 턱시도를 입어야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았다. 턱시도 안에 갇힌 몸은 금세 땀으로 젖었고,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불평할 수 없었다. 소피아의 결혼식이었으니까.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게이로 태어나 꽤 다양한 인생의 장면들을 지나왔다. 환영받지 못한 순간도 있었고, 설명해야만 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20년 가까이 소피아를 지켜봐 온 내가, 그녀의 결혼식에서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축하만은 아니었다.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먹먹함이 뒤섞여 있었다.
소피아는 늘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아 왔다.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소리치지 않아도 곁에 사람이 남는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그날 그녀 곁에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소피아를 떠올렸다. 닮아 있었다. 말투도, 웃는 방식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그 친구들은 프라이드 메이드가 되어 소피아의 곁에 섰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자리, 하지만 전혀 초라하지 않은 자리.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소피아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관계를 쌓아왔는지를 말없이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결혼식은 결국 한 사람의 선택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 전체를 확인하는 자리인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걸어온 길 위에 남아 있는 사람들, 관계들, 그리고 신뢰들.
40도가 넘는 날씨 속에서도, 턱시도 안에서 땀이 흐르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 한가운데에, 증인처럼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소피아의 결혼식은 화려했지만 과하지 않았고, 클래식했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피아다웠다’. 그리고 나는 그 하루를 통해, 오랫동안 지켜본 한 아이가 이제는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날의 더위는 오래 기억에 남겠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은, 소피아가 자기 삶을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확신이었다.
나는 내 게이의 삶이 다른 누구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다양했고, 충분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20년 전의 내가 이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40도가 넘는 날, 턱시도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이렇게 삶을 돌아보고 있을 거라고.
아마 그때의 나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게이들도 아직은 모를 것이다.
20년 뒤에 자신이 어디에 서 있을지, 누구와 웃고 있을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하지 말자. 지금 힘들다고 해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 포기하지 말고 조금 느려도, 조금 흔들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인생을 살아보자. 시간은 생각보다 멀리 데려다준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장면 한가운데에서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