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를 혼을 내고 안아 주고 다독여 주는 거야?

혼을 내고 내가 행복이를 다독여 주니 그것을 보고 톰이 나에게 화를 낸다

by Ding 맬번니언

2018년 4월 12일 과거 이야기


톰 과 히스 부부랑 사는 지역도 멀고 이제 우리들 사이도 거리가 멀어지는 것만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서로 아이가 없을 때는 잘 지냈는데 행복이와 알렉스 싸움이 어른 싸움 만드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나는 행복이를 키울 때 때리면 안 되는 것과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는 것이 기본이지만 톰은 알렉스를 전통 훈육 방식인 체벌을 선택했다. 그런데 톰이 전통 훈육 이상으로 알렉스를 대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나랑 잘 맞지 앉은 것 같다.

알렉스가 실수 혹은 문제를 일으키면 톰은 알렉스를 혼내고 끝이다. 나도 아직 서투른 사람이기에 행복이를 혼도 내고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마지막은 행복이를 다독여 주고 상황을 설명하고 행복이 감정을 알아주고 내 감정도 힘들지만 앉아주고 끝을 낸다.


나와 톰의 가장 다른 점은 톰은 체벌을 하고 끝, 나는 체벌을 할 경우 마지막은 다독여 주고 끝 이런 서로 다른 훈육 방식으로 인하여 우리는 서로 의견 충돌이 종종 발생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거리감이 생겼다.


놀다가, 행복이가 알렉스를 밀었는데 내가 혼을 내니 행복이가 운다. 혼을 내고 내가 행복이를 다독여 주니 그것을 보고 톰이 나에게 화를 낸다. 자신이랑 다른 훈육방법 때문이다.


“영, 너는 왜 행복이를 혼을 내고 안아 주고 다독여 주는 거야? 그것은 혼을 내는 것이 아니야, 혼을 내고 울고 스스로 극복해야지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충분히 혼이 나고 기분을 풀어주어야 해 그래서 다독여 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너희 부모님도 그렇게 했어”

“음~~ 아니”

“봐”

나는 순간 말을 잊지 못했다. 나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을 책을 통해서 좋다는 이유만으로 따라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박사도 아니고 전통 방식에 문제점을 설명한다고 한들 톰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톰이 이야기하는 데로 아니면 더 심하게 훈육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톰이 틀렸다고 강하게 반박할 수가 없다. 그리고 화가 너무 많이 나서 톰은 알렉스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톰이 돌아가고 행복이를 보면서 꼼꼼히 생각했다.


지금 둘 다 만 3세로 알렉스가 행복이보다 더 말 도 잘 듣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다. 톰이 네가 하는 훈육이 맞는다면 행복이가 말도 더 잘 듣고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니 야라고 물어보는데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공부한 책들에서 아이들이 보통 말 안 듣는 것이 당연하고 부모가 차분히 행동해야지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솔직히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방식으로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다.


솔직히 가끔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나 기분이 다운된 힘든 상황에서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가 책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기에 경험이 부족해서 그냥 나도 모르게 행복이에게 욱한다.


신문이나 뉴스에 보면 살인자,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중들이 그들의 부모를 욕하는 것을 이해를 못 했다. 사람이 노력하면 고쳐지는 것이라고 나도 아빠 같은 사람(이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를 하고 싶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 가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이 무섭다.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이런 것은 타고나지만 그 이외 환경으로 인하여 성격이 형성된다고 하는데 행복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궁금 하기는 하다. 보통 의사집에서 의사 나오고 나쁜 짓 하는 집에서 계속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가정환경과 주변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행복이가 외향적인 성격에 조금 남자답게 거칠기는 하지만 몬테소리 학교에서 그런 행복이를 차분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이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차분해지면 좋겠다.


요즘 그래서 열심히 “화내지 않고 내 아들 키우기”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예가 전부다 행복이 갔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남자아이들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애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것이 문제다. 행복이를 다른 사람들 기준이 아닌 나 스스로 행복이를 한 명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행복이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행복이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를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버릇으로 즉, 자신의 경험으로 특정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체하는 행동등이 나온다.


만 8살이 된 지금 3살에 하는 버릇 중 유일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이다. 왜 아들이 3살때 아들을 믿지 하고 초조하고 힘들어했을까?나도 자신이 없어서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월이 지내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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