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이를 위해 테니스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립학교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웨슬리를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 혹시 학교에 입학해 기회가 된다면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모의 욕심이다.
하지만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태도다. 오늘도 레이 코치가 행복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궁시렁 궁시렁거리며 코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참기 어려웠다.
못마땅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났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가르쳐 주는 사람에게는 공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가르침을 받는 태도다.
잘하느냐, 못하느냐보다 들으려는 자세가 먼저라고 믿는다.
누군가 시간을 들여 나를 도와주고 있다면 누가 되든 그 말을 한 번이라도 더 들어보고, 한 번이라도 더 고쳐보려는 노력은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이는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강하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할 거면 테니스 하지 마.”
“누가 너를 도와주려고 하면 일단 들어야 하는 거야.”
그 말을 하면서도 내 안에서는 다른 생각이 동시에 올라왔다.
이게 맞는 방식일까.
나는 지금 아이에게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기준을 강요하고 있는 걸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 경계가 참 어렵다. 가르쳐야 할 것과 기다려야 할 것.
지금 당장 잡아야 하는 것과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것.
특히 테니스처럼 꾸준함과 태도가 중요한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 실력은 시간이 지나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태도는 어릴 때 잡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 화를 냈다. 단순히 궁시렁거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태도가 앞으로의 모든 배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다. 행복이는 아직 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아이가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혼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다시 물어보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같이 찾아가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 방향을 조금 강하게 잡았다.
내일은 조금 더 부드럽게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도 함께 배우고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