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나라 시민 되기

2013년 7월 9일

by Ding 맬번니언

유달리 꽤 쌀쌀한 아침이었다. 오늘은 격식에 맞춰 차려입을 생각이었기에 오랜만에 정장을 꺼냈다. 오늘은 시민권 세레모니 행사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민권 세레모니’ 호주 시민으로 새롭게 인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축하행사이다.

‘나는 오늘 호주 사람이 된다.’


내가 원해서 호주 시민권 신청을 했고, 이 시민권이 이제 내 새로운 삶과, 행복이와 만날 날을 더 가깝게 만들어줄 것임에도 아침부터 정장을 갖춰 입으며 이런 저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세레모니를 하기 위해 15분 정도 전에 미리 도착해 서류 등록을 마쳤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기념식은 진지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호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축하하기 위해 스티븐과 소피아가 내 세레모니에 참석해주었고 행사장에 들어서니 함께 시민권을 받은 여러 사람들을 환영하는 듯 다양한 국적기 장식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태극기도 있었다. 오늘 세레모니에 참가하는 한국 사람은 내가 유일했는데 나는 한참을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나의 나라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국기를 바라보며 내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여전히 내 조국을 향한 애국심은 그대로이며 아마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나라로 한국을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복잡하고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통계를 보면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국적을 버리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해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여행을 마치고 자신이 태어나고, 가족의 터전이 되었던 곳으로 회귀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에서 살아갈 결심을 가진 이들 중에 사연이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 오늘은 바로 내가 그 얼마 없다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게 될 한 사람이 되는 날이었다.



먼 훗날, 호주 어느 곳에 묻힐 나의 무덤을 낯선 이가 본다면 한국에서 태어나 왜 호주에 묻히게 되었는지 내 사연을 궁금해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오늘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이를 만나고 싶고, 행복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호주 국적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사연 많은 한국에서 온 호주인이 될 것이다.

‘나의 선택은 행복이를 선택한 것이다.’


게이인 내가 행복이를 만나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대리모의 도움이 필요했다. 한국은 대리모 자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기에 불법은 아니지만 합법도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로부터 부모로서 인정과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한국 정부 측에서는 대리모와 관련된 일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더 컸다. 반면 호주는 대리모가 불법이 아니다. 원한다면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지는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택일하듯 호주 국적을 선택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27년을 한국문화 속에 살아왔고, 2년 2개월 간의 군 복무까지 마치며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대한남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사랑할 것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사랑만큼 내 아이를 원하는 간절함 또한 깊었고 그렇기에 오늘 법적 한국인임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내가 포기한 것은 그런 한국인으로서의 법적 신분 이외에도 한국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내 뿌리라고 생각했던 성과 본관도 있었다. 이름이나 성을 바꾸려면 빅토리아 주에서 Change of Name Certificate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오늘 부로 내 ‘성’은 ‘비렐’이 되었다. 그렇게 ‘성’을 바꾼 후 시민권을 받고 난 뒤에는 여권, 운전 면허증, 신용카드 등 이름이 적히는 모든 곳을 하나하나 바꿔야 했기에 여간 번거로운 절차가 아닐 수 없었지만 나는 그런 번거로움 정도는 행복이를 만나는 날에 가까워졌다는 기쁨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성을 바꾼 배경에는 호주는 대부분 결혼을 하면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라 변경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 한 가족은 같은 성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다. 나는 행복이가 꼭 내 성을 따르는 것보다 성장해나가면서 다른 호주 가족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며 자라나기를 바랬기에 스티븐의 성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호주 사회 내에서 스티븐의 성을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받아들일 테니 학교 생활이나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한 가족인데 나와 행복이만 같은 성을 쓰고, 스티븐만 다른 성을 쓴다면 행복이가 크면서 스티븐을 아버지로 친밀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조금 있었다.



부모가 되려 하니 아주 사소한 부분, 아이가 성장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고려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결정하게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록 태어난 나라를 떠나,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고, 어느 일부분에게 거부당할 수 있음도 감수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행복이의 삶은 가능하다면 그 어떤 곳에서도 거부당하지 않고, 조금의 이질감도 느끼지 않고 호주인으로서 잘 뿌리를 내려 살아가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랬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성을 쓰는 ‘비렐’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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