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가 성인이 되는 날

2013년 12월 8일

by Ding 맬번니언

행복이는 언제 만날까? 스티븐과 내가 상의한 시점은 스티븐의 아이들이 독립하고 난 이후였다. 나는 스티븐의 아이들에게 되도록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 행복이를 만나기로 했다. 내가 게이라고 식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커밍아웃으로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한 것이다. 혹시나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소피아의 생일, 소피아가 성인이 된다.

어엿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정받는 날, 얼마나 뜻 깊은 날인가? 그래서 우리는 시티에 있는 ‘Coda’ 라는 식당에서 소피아 18번째 생일을 축하하기로 했다. ‘Coda’는 아시안 퓨전 식당으로 트립어드바이저 기준 3000개의 맬번 식당 중 5위에 위치해 있는 유명한 식당 중 하나로 특별한 날에 정말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소피아의 파티에는 나, 스티븐, 소피아 그리고 조슈아 4명명만이 함께 했는데 나는 소피아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생일 중 하루를 자신의 엄마가 아닌 나와 함께 해주었다는 것에 정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식당에 도착하니 일요일인데도 매우 분주해 보였고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을 확인하고 식당 안쪽에 있는 우리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식당 직원이 메뉴 내용과 와인에 관련 우리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자리에 앉아서 창을 보는데 식당이 지하에 있어 창문으로 밖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다리만 보여 나는 그 광경이 조금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튀김요리였고, 다른 곳에서 먹는 튀김 음식처럼 기름기가 너무 많아 입 주변에 기름이 묻어 나지 않아서 담백하고 깔끔해서 좋았다. 음식 과 와인을 마시면서 저녁 식사를 즐겼다.

그렇게 우리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 크라운 카지노로 장소를 이동했다. 소피아는 방금 막 자신의 생일이 지나서 카지노에 들어 갈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카지노에 도착하자마자 친구 톰을 찾았는데 톰은 카지노 딜러로 오늘 마침 야간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톰은 ‘이제 너도 어른이구나.’ 라며 소피아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우리가 했던 게임은 룰렛 게임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카지노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어짜피 잃을 돈이었지만 소피아의 생일이고,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꼽은 일이었기에 적은 돈이나마 소피아에게 100불 정도를 주고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게임을 해본 후 소피아는 ‘크라운 카지노’에 있으니 나이트도 가보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그 날밤, 소피아의 첫 성인의 날을 맞아 아주 바쁘고 즐겁게 움직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소피아가 출입구 앞에 서 있는 경호원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가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우리가 Light At Crown안으로 들어가니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일요일 밤 12시가 조금 넘어 사람들은 거의 없었기에 4 명이서 맥주를 마시면서 가볍게 춤을 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고로 호주 나이트는 한국의 부킹 시스템 같은 웨이터가 남녀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클럽이랑 조금 비슷하다.

‘내가 소피아를 처음 만난 것 2006년 4월23일, 그녀의 나이 만10살 때였다.’


스티븐은 자신이 이혼남이라고 나에게 말했고 아이들과 ‘Anzac Day(안작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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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긴 휴가를 타즈 매니아로 간다고 했다


스티븐은 나와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먼저 자신의 아이들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하였고 그렇게 나는 스티븐 가족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되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스티븐도 이혼 절차가 아직 진행 중이었기에 나는 무척 긴장했었다. 당시 스티븐은 친한 친구로서 나를 소개했다. 아빠가 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 나이일 수 있고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데 꼭 솔직하게 애인이며 지금 서로 만나기 시작한 단계라는 자세한 설명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나는 스티븐의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고 함께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착하게 나를 반겨주었고 나와 스티븐의 감정이 좀 더 깊어졌다. 함께 하기로 한 2006년 5월 6일 이후에는 아이들과 거의 매주 여행을 가거나 게임을 함께 하며 어울려 놀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조슈아가 먼저 나와 스티븐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는데 사실 처음엔 덜컥 겁이 났었다. 그때 내 나이가 겨우 28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과, 그 사람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은 별개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스티븐은 호주 문화상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면 독립할 거라고 말해주었고 나 역시 차분히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았기에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소피아도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했기에 우리 넷은 그렇게 모던 패밀리가 되었다.


호주에서 부부가 이혼을 하면 대부분 아이들은 엄마와 산다. 처음에 스티븐 아이들도 엄마랑 살았고 2주에 한 번씩 주말에만 우리랑 지냈다. 어느 나라든 비슷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어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경우는 호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는 2주에 한 번, 주말에만 보니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냈는데 내내 한 집에서 매일 같이 산다는 것은 의미 자체가 달랐다.


한번은 함께 살기시작 한 후, 의아한 일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소피아가 특정 요일만 되면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보통 그 날의 결석 이유는 아프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볼 때 소피아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지나자 나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알아보니 소피아가 결석하려는 날은 수학수업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소피아는 수학(특정 과목)이 싫어서 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된 것이다. 엄마, 아빠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던 소피아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의 이유를 내가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후 그 문제는 나를 제외한 소피아의 엄마, 아빠가 나서 학교와 합의하였다.


나는 조슈아, 소피아의 부모가 아니다. 내 위치는 내가 정해야만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물러서지 않고 나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를 떠올려보면 내가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지 않고 스티븐의 전 부인을 배려했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잘 지내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배려하며 물러섰던 행동이 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가 아니기에 늘 어느 정도까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 내 위치에 대해 늘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10대 아이들 둘과 함께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실제로 지난 6년 동안 우리 두 사람의 문제보다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로 싸우는 일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솔직하게 스티븐에게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티븐은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했고 나는 지난 6년간 아이들과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큰 인내와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내가 아이들과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지난 6년 동안, 아이들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문득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기에 느낄 수 있는 남다른 행복감과 기쁨도 많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어떤 때에는 화가 나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티븐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티븐은 적어도 내가 지켜본 6년 동안은 단 한 번도 조슈아와 소피아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한 집에 살면서 어떻게 저렇게 화를 한 번도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친구들은 농담처럼 스티븐이 보살 같은 면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마치 스티븐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고 나는 그렇지 않아서 생긴 차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게도 피를 나눈 자식이 생긴다면, 나도 스티븐처럼 화를 내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줄 수 있게 될까? 그런 궁금증이 6년 동안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었고,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질문의 답은 아마 나와 혈연으로 연결된 행복이가 태어나 함께 살아가게 되면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옛 말에,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천륜이라 한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기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 나 역시 부모님과 그런 인연이었겠지. 내가 행복이와 그런 인연을 맺는다면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모든 답을 알게 되는 것일까? 아직 부모가 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만 할 뿐, 그 위대한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저 부모로서 내가 가진 장점 한 가지, 스티븐의 아이들과 함께 살며 반쪽이나마 부모 노릇을 해 보았으니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에는 어느 정도 자신 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궁금하고 기대된다. 나랑 스티븐이 함께 키운 아이가 어떻게 자라서 어른이 될까? 행복이가 18살이 되면 오늘 소피아 생일을 함께 보냈던 것처럼 비슷함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 이 감정을 그대로 간직했다가 그 때 다시 꺼내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부모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한국 식구들 때문이다.


[1] 참조: Australian and Zealand Army Corps의 영문 약자인 Anzac Day(안작)은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으로 풀이할 수 있고 안작 데이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갈리폴리 전투에 참여했던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을 기르는 국가 추모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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