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9일 과거 이야기 (참고로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닌 과거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이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 경험을 밑바탕으로 언제 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취미 혹은 직업으로 가졌어 좋겠다. 올해는 행복이를 겨울 농구 시즌에 가입시켰다. 그런데 가입하고 보니 행복이 팀에 슈퍼스타가 있었다. 그 아이는 보통 아이(행복이랑 11개월 차이)보다 10cm 정도는 더 컸으면 농구도 진짜로 잘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농구를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행복이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행복이가 좋아하는 것은 텔레비전 보기와 게임하는 것이다.
농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행복이 처럼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은 그런 아이를 보면 상대적으로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비록 저학년이 하는 농구이지만 골대 높이는 어른들이 하는 높이처럼 상당히 높다. 이제만 농구를 시작한 행복이는 골을 골대에 맞추는 것부터 불가능해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행복이에 농구 연습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행복이 반 아이들이 대부분 행복이 팀이기도 하고 팀 스포츠를 배우는 것이 행복이에게도 좋을 것 같아서 팀에 남았다.
포기하지 않고 농구를 계속하다가 행복이가 오늘 드디어 첫 골을 기록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알바를 하고 있어서 그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스티븐에 실시간 중계로 그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신이 나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행복이가 느꼈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했다. 한 골이지만 이런 사소한 성공이 행복이를 성장시키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행복이가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을 살아보니 결과가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과정을 위해 흘린 땀을 기억하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런데 행복이 코치가 저번주부터 경기를 이기고만 싶어 하는 행동을 한다. 행복이 팀의 친구 형을 데리고 와서 경기를 뛰게 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2살이나 더 많다. 경기 중 팀에 인원수가 부족하면 대신 다른 선수가 경기에 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행복 친구 형이 경기를 뛴 첫 경기는 우리 팀 인원이 6명이 있었고 좋게 생각해서 사람수가 부족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두 번째 경기는 전원이 참가 선수가 남아돌았는데도 그 형을 경기에 뛰게 하였다. 당연히 2살 많은 그 형은 득점을 하였고 그렇게 해서 행복이 팀이 두 번다 이겼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꼭 이겨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주로 소신껏 행동하는 편이다.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아닌 건 아니라고 뚝심 있게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 그것이 나다. 하지만 내가 맞다는 행동이 좋은 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나서지 않을 생각이다. 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한편으로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잘못된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행복이가 편법을 사용 어떻게든지 경기를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닌 정정 당당한 루저가 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불편하지만 내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고 그 사람이 행복이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너무 나서지 말고 중간 입장에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나의 행동을 결정할 것이다. 학부모가 되니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지켜보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 내 행동으로 행복이를 상처 주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스티븐이 경기규칙을 확인해 보니 나이차이 2살까지 은 경기에 뛸 수 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지금 9살이고 2주 뒤면 10살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깨운치가 않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좋다. 규칙상 2살 많은 아이를 경기에 뛰게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경기에 이기고 싶어서 쓰는 편법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것을 알고도 나도 행복이 부모이기에 내가 나서 문제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로 인해 그 피해를 행복이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행복이 팀 다른 학부모님들처럼 이번 사건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생각이 났다.
2022년 4월에 개봉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영화의 배경은 중학교이다. 이 학교에 관해서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상위 1%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의 학교이다. 그런데 학생 한 명이 학교 근처에서 의식불명으로 발견된다. 이 아이는 같은 반 친구 4명의 이름을 적은 편지를 남겼고 이 4명의 학부모는 학교로 불려 오게 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인 것을 알아도 그들의 잘못을 덮어주려 한다. 자식이 괴물이 되면 그 부모는 악마가 된다는 영화카피처럼 영화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다.
행복이가 크다 보니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서 많은 책을 읽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 부모들도 처음부터 그런 괴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더욱 쉬워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 좋은 사람이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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