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음 알아보았던 것은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지는 것이 가능한 나라를 찾는 일이었다.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지는 일은 예전에는 인도에서 많이 이뤄졌는데 안타깝게도 최근 불법이 되면서 우리의 선택지가 될 수는 없었다. 인도가 안 된다면 다음은 태국, 미국 그리고 캐나다등 있는데 가격이나 지리적 위치로 우리는 태국으로 정했고 스티븐과 나는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ALL IVF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시험관 시술 등 절차를 지켜보기 위해 클리닉에서 5일 정도 태국에서 지낼 것을 권유했기에 태국에 머무르기로 했다.
시험관 시술은 먼저 난자 제공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난자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확인한 다음 이뤄진다. 준비단계는 남자 쪽은 3~4일 정도 사정을 하지 말고 정자를 모아둔다. 그와 동시에 난자 제공자가 한 번에 여러 개의 난자가 배란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주사를 맞은 후 난포를 터트리는 주사를 맞은 후 난자 채취술을 한다. 난자가 채취되는 날과 같은 날짜에 정자도 채취를 해야 했기에 일정을 맞춰야 했는데 처음에는 토요일에 난자를 채취하기로 했으나, 난자 제공자가 준비가 되지 않아 월요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 한 번 사정을 하고 다시 월요일까지 신선한 정자를 모았다. 그리고 채취한 정액을 용기에 담아 사전에 안내받은 병원 내 공간에 가져다 두었고 그 검체 용기를 간호사가 가져가 특수처리 등의 조치를 취한 후 내게 정자들의 숫자, 운동성이 적힌 종이를 준다. 다행히 내 정자들의 상태는 ‘상’ 으로 적혀 있었다. 앞으로 행복이를 만나는 날까지 산 넘어 산, 긴 여정이 되겠지만 정자 상태가 좋다는 것은 시술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게 오렴 행복아, 아빠는 그거면 돼’
시험관 시술을 하는 날 나는 태국에 있는 절에 가서 기도를 했다. 행복이가 아무 이상 없이 잘 태어나기를 기원했다. 행복이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날 수 있기를 먼 타국의 절에서 빌고 또 빌었다. 예로부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던가, 행복이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는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그런 기도를 부처님께서 들으신 것일까? 우리의 수정란은 의학적인 수정란의 등급을 1~10으로 놓고 보았을 때 대부분이 7~8의 상위권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성별은 여4, 남3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험관 시술의 마지막 관문, 배아 이식도 태국에서 만난 대리모의 도움을 받아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2주를 기다렸다. 배아 이식이 잘 착상이 되어 임신이 성공적인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긴 2주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4주차 피검사를 통해 우리는 임신이 무사히 성공했음을 축하한다는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라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이제 아무 일 없이 행복이가 태어날 날 만을 기다리면 된다.
‘드디어, 내가 아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