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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티븐 같은 아빠는 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by Ding 맬번니언

오늘은 호주의 9월 첫 번째 주 일요일, 아버지의 날입니다. 비록 제가 호주에 살고 있지만, 저에게는 한국의 5월 8일 어버이날이 더 의미 있는 날로 다가옵니다. 18년을 넘게 살고 잇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날을 특별히 기념해 본 적이 없어서,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날로 느껴지죠. 그런데 스티븐은 다릅니다. 호주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는 아버지의 날이 중요한 날일 것입니다. 오늘 스티븐이 아버지의 날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저는 스티븐 같은 아빠는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날인데도, 스티븐의 아이들인 소피아와 조쉬아는 스티븐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셋만을 위해 점심 식사를 예약해 두었죠. 그런데 점심시간 직전에 소피아에게 연락이 와서, 소피아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저희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쿨한 아빠가 스티븐이죠.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조쉬아를 만나기로 했지만, 스티븐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결국 조쉬아를 만나러 가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는 사람인 스티븐의 성격이 잘 드러난 하루였습니다. 저도 가끔은 스티븐처럼 조금 더 느긋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이 항상 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스티븐처럼 중요한 날에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고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런 성격 때문에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날을 별일 아닌 듯 넘겨버리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티븐 같은 아빠는 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스티븐이라면, 오늘 하루는 저를 위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희생해 주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하루 정도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죠. 일 년에 한 번뿐인 아버지의 날, 어머니의 날에도 자식이 부모를 위해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조금은 섭섭할 것 같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저는, 아마도 죽어도 스티븐처럼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날 점심도 결국 스티븐이 계산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저는 행복이가 성년이 되면 꼭 이야기할 것 같아요. "아빠도 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테니, 하루 정도는 아빠를 생각하며 보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요.

아들이 저를 위해 만들어준 편지가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단 한 장의 편지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사랑이 저를 감동시키네요. 이 편지 한 장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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