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서 불어오는 동풍과 함께 동네에서는 나무 가지치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선을 피하기 위해 가지를 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 장면을 보며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나무에게는 가지치기가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잘려 나가는 가지들이 마치 상처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지치기를 하면 나무가 더 건강하게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은 참 모순적이기도 하죠. 나무의 일부분을 제거해야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이 자연의 신비로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때로는 불가피하게 어떤 부분을 포기하거나 잘라내야 할 때가 있는데,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결국은 더 나은 성장을 가져오곤 하니까요.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행복이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혹시 아이가 어디 다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학교 교장이 전화를 건 이유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행복이가 쉬는 시간에 친구를 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장은 행복이가 이미 벌을 받고 있지만, 저희가 이 상황을 알아야 할 것 같아 연락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집에서 한 번 더 아이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많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며칠 전 제 트램 앞에서 한 정거장을 천천히 걸어가던 난민과 오늘의 행복이 사건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두 사건 모두 문제의 본질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저희는 행복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행복이는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희는 장난을 치는 것은 자연스럽고 괜찮지만, 그 장난의 기준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상대방이 다치거나 불쾌해질 수 있는 행동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난민들에 대한 제 생각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난민들이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법과 규칙, 그리고 책임감을 함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경계와 책임을 가르치듯, 정부도 난민들에게 사회적 규범을 가르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가지치기를 통해 나무가 더 건강하게 자라듯, 사람도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배움과 교훈이 필요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다루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행복이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럴 때마다 실수를 바로잡고, 다정하게 이끌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나무의 가지치기를 잘해주면 나무가 더 건강하고 잘 자라는 것처럼, 아이도 꾸준히 바로잡고 가르치다 보면 언젠가는 올바르고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할 날이 오겠죠. 난민들도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필요한 가르침과 기회를 제공받으면, 시간이 지나 훌륭한 호주 시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모든 성장은 인내와 관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