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트램을 운전하고 있는 중, 한 승객이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트램을 안전한 곳에 정차시키고 승객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트램 안에서 지갑을 발견했다며 저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지갑을 받았습니다. 트램은 계속해서 멜버른 대학교 방향으로 향했고, 도착한 후 잠시 여유가 생겨 지갑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현금으로 약 40만 원(한화 기준)이 들어 있었습니다. 꽤 큰 금액이라 놀랐지만, 지갑을 더 살펴보니 영국 신분증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멜버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거나 유학생일 가능성이 커 보였습니다.
지갑 주인을 직접 찾아주고 싶었지만, 문제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신분증 외에는 전화번호나 이메일 같은 연락처가 전혀 없었고, 트램 안에서 지갑을 전달해 준 승객도 이미 하차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큰 금액이 들어 있는 지갑이라 고민이 되었지만, 회사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트램 운행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 분실물 처리 절차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회사에 도착한 후, 지갑과 내용을 분실물 담당 부서에 제출하며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린 승객이 무사히 지갑을 되찾기를 바라며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하던 길에, 오랜만에 다니엘 형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다니엘 형은 4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형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밝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형은 개인 파산을 해야 하는 만큼 심각한 재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알고 보니 형은 파트너 게리와의 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게리는 형의 신용을 이용해 대출을 받아 무려 2억 원의 빚을 떠넘겼고, 이후에도 빚을 같은 대신 마치 부자처럼 무책임하게 소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채를 감당하기 힘든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형은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었고, 게리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전혀 책임감을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상심한 상태였습니다.
다니엘 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트램에서 주운 지갑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갑 안에 현금 40만 원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처음에는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의무감이 앞섰지만, 동시에 '내가 그냥 40만 원을 가져버릴까?'라는 유혹이 순간적으로 스쳤던 것도 사실입니다. 큰돈이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면 누구든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그 유혹을 넘겼습니다. 왜냐하면, 돈 자체보다도 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제 행동이 제 자신을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느꼈던 그 순간적인 유혹은 형이 겪고 있는 상황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은 게리를 신뢰했고, 함께 미래를 꿈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신뢰는 무참히 깨졌고, 그로 인해 형이 겪고 있는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었습니다. 게리는 형의 신용을 이용해 막대한 빚을 떠 안겼고,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형은 혼자서 빚의 무게를 감당하며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겁니다.
형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형, 지금 정말 힘든 상황이라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나면 형은 더 단단해질 거예요.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겠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꼭 말해주세요." 형은 짧게 대답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와 절망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파산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반면 게리는 형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었습니다. 신뢰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 형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 간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큰 고통과 혼란을 가져오는지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퇴근길에 형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저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일까?',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적은 없을까?' 형의 이야기는 저에게도 깊은 반성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신뢰와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 하루였습니다. 형이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