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스티븐과 내가 함께하기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나는 10년 전, 시드니 미드 나잇 시프트에서 스티븐을 운명처럼 만났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내가 스티븐을 만날 당시엔 나는 시드니에, 스티븐은 맬번에 살았다. 그런 거리적인 차이와 우리가 그간 겪었던 더 큰 차이와 문제와 사건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조금씩 희미하고 좋은 추억이 되어갈 정도의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10주년 기념으로 발리 여행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번 여행은 행복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는 가족 여행이기도 해서 너무 기대하고 있다.
내가 처음 스티븐이 만난 날,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가 떠오르는 듯하다.
10년 전
La-la-la, la-la-la, la-la-la-la-la, oh
You know, I've never felt like this before (oh, oh)
La-la-la, la-la-la, la-la-la-la-la, oh
This feels like, so un real (oh, oh)…
클럽에서 아주 시끄럽게 리한나 노래가 나오고 있었고 나는 미드나잇 시프트에서 대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놈은 꼭 늦게 와" 대희는 호주에 온 뒤 이반 시티 (1999년 5월에 화랑으로 시작 해 2001년 7월 30일에 정보통신윤리 위원희의 ‘해당 정보 삭제 요구’로 폐쇄된 적이 있다. 동성애자를 위한 사이트이지만 사실상 게이들만 이용한다.) 를 통해 알게 된 호주에 와서 처음 생긴 한국인 친구였는데 요즘 만나는 사람이 생겨서 나와의 약속에 늦을 때가 많았다.
그날도 혼자 술을 마시면서 대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누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나는 이내 시선이 꽂힌 쪽을 쳐다보았고 그 시선의 끝에는 눈이 파란 호남형 백인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늦는 게 아니라 아예 안 올 것 같아' 나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저 파란 백인과 함께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운명처럼 만났다.
"How are you?"
"너는 어디서 왔어?"
"나는 맬번에서 잠깐 여행 왔어"
"나는 한국 사람인데 호주에 공부하려고 왔어~ 내가 2월 21일 도착했으니 오늘 부로 18일째야."
"내가 운이 좋다"
"무슨 운이 좋아?"
"너를 오늘 만나서"
스티븐이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술을 사주겠다고 권유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네가 추천하면 그걸 한번 마셔볼게"
솔직히 그 당시 나는 아직 영어가 서툴렀다. 그래서 술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술도 좋아하지는 않았다.
"bourbon and coke 마셔볼래?"
"오케이"
우리 둘이 술잔을 부딪치면서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어떻게 미드나잇 시프트를 오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오늘 왓슨스 베이에 있는 레이디 누드 비치에 갔어~거기서 친구랑 선탠을 즐기는데 두 명의 동양 남자를 보았지~ 나는 어디서 왔어? 라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한국에서 왔다는 거야~"
"뭐라고? 그 사람들 어디 있어?"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내일 한국 간다고 일찍 돌아갔어"
"아쉽다 나도 만나보고 싶은데"
"그 한국 사람 때문에 너랑 내가 만난 거야"
"맞아"
우리 둘은 한참 술을 마시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Arq로 장소를 이동하기로 한다. Arq는 옥스 포드거리에 게이바 중 제일 유명한 곳으로 드라마 '퀴어 애즈 포크'를 보면 브라이언이 호주에서 온 애랑 섹스 하는데 그들 대화 중 Arq가 물이 제일 좋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미드나잇 시프트에서 Arq까지 걸어가면서Taylor Square(테일러 스퀘어)를 지났다. 차 소리에 클럽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지나치고 나니 Arq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들어가려고 입구에 서니 경비원이 날 붙잡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내게 신분중 제시를 요구했다.
"신분증 보여줘"
"자 여기 내 여권"
"동양 애들은 너무 어려 보여서 나이를 모르겠어"
"아니 내가 특별히 어려 보이는 거야"
"그래~ 네가 어려 보이기는 한다"
여권 가지고 가기를 잘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도 리하나 노래가 나온다. 요즘엔 정말 리하나 노래가 대세였다.
"우선 여기까지 왔으니 고고 보이들이 좀 보자"
"좋아"
우리 두 사람은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무대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은 두 명의 고고 보이들이 열심히 춤을 춘다. 고고 보이들에 춤을 지켜보면서 스티븐이 먼저 친밀하게 다가와 스킨십을 시도했다. 나도 싫지는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인지 기분이 좋고 더 격렬하게 움직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층으로 다시 올라가 봉을 잡았다. 스테이지에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불나방처럼 봉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영 너 춤 잘 춘다"
"내가 춤 좀 추는 편이지~ "
나는 리한나 노래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춘다.
S-O-S, please, someone help me not healthy for me to feel this
Y-O-U are making this hard I can't take it, see it don't feel right
S-O-S, please, someone help me
사람들의 환호 소리에서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한참을 즐겁게 놀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려서 우리는 스티븐이 머물고 있는 친구 집에 가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티븐이 갑자기 나에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은 첫 키스를 하고 기분 좋게 오른 취기를 빌려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렇게 기분 좋은 한 번의 섹스가 끝나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고 샤워를 하려 했다. 그런데 곧바로 스티븐이 따라 들어와서 또 한 번의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게 첫날밤부터 여러 번의 사랑을 나눈 우리 두 사람은 지쳐 곯아떨어졌다. 지금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요즘은 행복이 때문에 예전만큼 사랑을 나누지는 못한다. 조금 더 솔직함을 더해보자면 요즘은 솔직히 섹스보다 잠이 더 좋다. 이러면 늙는다는데 나도 늙어가나 보다.. 10주년이되니 부쩍 옛 생각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 듯한 것은 그만큼 우리가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