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숨 쉬는 공간, 기억의 돌길을 따라 걷는 시간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마을 안에 크고 작은 공동묘지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프랑스도 이런 공동묘지가 마을 안에 들어와 앉아 있고, 그래서 오가며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동묘지에 대한 관념은 문화권별로 사뭇 다른데, 파리에는 20개의 공동묘지가 있다. 이른바 '파리 3대 공동묘지'를 포함하여 14개는 파리 시내에 있고, 나머지 6개는 파리 시외에 있음에도, 20개 묘지 모두를 파리시가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가 지금 같은 묘지에 대한 토대를 마련한 것은 1804년 나폴레옹이 ‘매장 및 묘지에 관한 칙령’(Décret impérial sur les sépultures)을 제정하여, 묘지들이 정비되고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평등권을 강조하는 이 칙령은 모든 시민이 인종이나 종교와 관계없이 인간답게 동등하게 묻힐 권리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파리에는 이른바 '3대 공동묘지'가 파리 중심부에서 동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에 있는데, 이는 단순한 매장지가 아닌, 시간과 기억이 겹쳐진 도시 파리의 또 다른 얼굴이자 숨결이다. 이 묘지들도 처음 개장 당시에는 파리 외곽에 조성되었지만, 1859년에 제정된 법령에 따라 1860년에 시행된 행정 개편으로 파리에 20개의 구(區)가 형성되면서 파리 시내로 편입되었다.
파리 동쪽 묘지는 20구에 위치한 '뻬흐라셰즈' 공동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로 1804년에 조성되었으며, 제일 크고 오래됐다. 남쪽 묘지는 센강 왼쪽 좌안(rive gauche, 左岸)인 파리 14구 번화가의 몽파르나스 타워와 몽파르나스 역 근처에 있는 '몽파르나스' 공동묘지'(Cimetière du Montparnasse)로 1824년 개장하였다. 그리고 북쪽 묘지는 파리 18구의 몽마르트르 언덕 서쪽 아래편에 있는 '몽마르트르' 공동묘지'(Cimetière de Montmartre)로 1825년에 문을 열었다.
그중에서도 '뻬흐라셰즈' 묘지는 가장 넓고, 가장 많은 이들의 사연이 얽혀 있는 공간이다. 바람이 스치는 오솔길마다 묘비의 언어가 속삭이고, 나무의 그림자가 과거의 시간을 품는다. 죽음은 이곳에서 끝이 아니라, 조용히 이어지는 삶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그래서 나의 추억은 오늘 이곳을 다시 걷는다. 삶의 선율을 따라 한 편의 랩소디처럼.
'뻬흐라셰즈' 묘지의 명칭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고해 신부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파리 최대 규모인 43.2헥타르(약 13만 680평)에 이르는 이곳은 삶의 속도와는 달리 고요하고 느린 숨을 쉰다. 원래 가톨릭 예수회의 터였던 이곳은 1804년 정원식 공동묘지로 조성되었고, 현재 약 7만 기 정도의 묘소와 매년 거의 1만 건에 달하는 장례식을 거행하는 오늘로 이어져 있다.
도심 속에 숨겨진 정원처럼 이곳은 묘지인 동시에 기억의 숲이며, 연간 약 300만 명의 방문객은 걸음을 멈출 때마다 각자 새로운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이곳 ‘뻬흐라셰즈’는 누군가에겐 마지막 이별의 장소이자, 누군가에겐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서랍이다.
오래전, 혼자서 첫 방문 할 때 나는 그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울까 봐 사실 좀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시민들이 산책하는 파리의 대표적 녹지 공간 중 하나로 밤나무, 단풍나무, 측백나무, 물푸레나무, 플라타너스를 위시한 매우 다양한 품종의 나무 4천여 그루와 토종 풀들로 울창하다. 그 무성한 숲 아래로 이리저리 나있는 크고 작은 오솔길의 고즈넉함이 차분하게 나를 반겼다.
여러 갈래의 약 15km에 달하는 오솔길을 따라 늘어선 멋진 나무들은 묘지의 풍부한 역사를 증언하는 수많은 조형물의 배경이 된다. 또한 태어난 곳이나 국적이 다른 유명인들이 일반시민들과 함께 이곳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숲과 그늘이 내주는 아름다움을 걷다가 찾아 만나는 옛사람과 나누는 고요함 속의 대화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색과 명상 그리고 마음의 편안함과 휴식을 얻게 해 준다.
'뻬흐라셰즈'에서 묘비들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이름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진다. 쇼팽, 비제, 오스카 와일드, 마르셀 프루스트, 발자크, 기욤 아폴리네르,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땅, 짐 모리슨, 모딜리아니, 이사도라 던컨, 마리아 칼라스 등 그 외에도 누구나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많은 유명인들이 여기서 쉬고 있다.
그들은 생전의 불꽃처럼 격렬하고도 자유로웠던 삶을 이제는 이 조용한 돌무덤 아래에 눕혀두었다. 그러나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라면,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들의 묘소를 찾아와 사진을 찍고, 꽃을 놓고, 속삭이듯 편지나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엔 단지 나무와 돌무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남겨진 이들의 기억과 감정이 죽은 자들의 흔적을 다시 삶의 무대로 끌어올린다.
그중에서도 미국 록 밴드 ‘도어스’(The Doors)의 리드보컬이자 프런트 맨 ‘짐 모리슨’(Jim Morrison, 1943~1971)은 찾는 이가 단연 많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그의 이름이 적힌 묘비에는 꽃과 낙서 등 무수한 흔적들이 겹겹이 남겨져 있다. 세상은 그의 목소리를 잃었지만, 목소리가 남긴 메아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묻히고 22년이 흐른 뒤 1993년, 록 그룹 '도어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다. '뻬흐라세즈'에 잠든 이 사내는 사라짐으로써 더욱 완전한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육체를 새롭고 자유롭게 해방했던 현대무용의 선구자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7~1927)은 87 구역인 '야외 봉안당'(columbarium)에 있다. 이 '콜룸바리움'은 중정(中庭)을 감싸는 회랑형 복층구조로 석조 아치와 차양 지붕, 그리고 벽면마다 칸칸이 누군가 안치되어 있다. 봉안 번호 6796, 검은 석판에 금빛 글씨로 새겨진 그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장식 없는 그 석판은 소박했다.
무대 위에서 자유롭고 격정적이던 그녀의 몸짓보다, 오히려 담백한 고요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고전의 틀을 깨며 새로운 움직임을 빚어낸 그녀가, 이제 더는 움직이지 않는 조용하고 정제된 공간 안에 머물며 아직도 그 춤의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 짧은 생애를 격렬한 색과 선으로 불태운 이탈리아 출신 화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가 묻혀 있다. 촘촘히 붙어 있는 묘소들 사이에서 그를 찾아내는 데, 한참을 서성거렸다.
모딜리아니는 극심한 생활고와 만성 질환으로 평생 불우한 생을 살다가 36세에 생을 마감하고, 여기에 묻힌다. 그가 숨을 거두자, 그의 뮤즈이자 사실혼 배우자인 '잔느 에뷔테흔'(Jeanne Hébuterne, 1898~1920)은 비극적으로 그를 따라간다. 훗날 '잔느'가 뻬흐라셰즈의 모딜리아니 곁에 합장하게 되면서, 비극적 사랑의 두 사람은 영원히 하나가 된 사랑으로 남는다.
타원형 긴 얼굴에 긴 목과 긴 코, 텅 빈 눈동자로 그려낸 그의 인물들은 그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누워있는 나부'(Nu couché)는 사후 95년 뒤인 2015년, 경매에서 1억 7,04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로써 모딜리아니는 소위 '1억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부재 속 존재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다.
그들의 이름 앞에 서면, 그것이 죽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묘지에서 삶을 생각하고 음미한다. 그렇게 이곳은 오히려 또 다른 삶의 랩소디처럼 여겨진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형태로 인간이 자행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수십 개의 다양하고 광범위한 기념비는 우리의 망각 속으로 가는 기억을 되살려 일깨운다. 특히, 이 묘지의 남동쪽 76 구역 근처 한편에 자리한 ‘페데레의 벽’(Mur des Fédérés)은 1871년 5월 파리코뮌 당시 ‘피의 일주일’ (la Semaine sanglante) 진압에 끝까지 저항하던 시민 의용군이 집단 총살되고 묻힌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무심하고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이 벽은 프랑스 시민 투쟁의 역사 한 획을 품은 돌담이자, 과거로 묻힌 침묵이 현재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자리다. 이 벽 앞에 서면, '기억은 돌보다 무겁고, 침묵은 말보다 크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선 저항의 흔적, 이곳에서 역사는 묻히지 않고 계속 호흡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묘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 '메닐몽땅 큰길'(Boulevard de Ménilmontant)을 따라 '뻬흐라셰즈'의 외벽 담장에 수평으로 펼쳐진 높이 1.3m, 길이 280m의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리시는 20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정전 100주년 기념비(Monument aux Morts de la Grande Guerre)를 제막했다. 여기에는 전쟁 당시 전사한 94,415명과 실종된 8,000명의 파리 시민 이름을 모두 기록한 추모의 선율을 담고 있다.
'뻬흐라셰즈'의 벽 바깥쪽으로 설치한 이 기념비는 고요한 묘지 안과 달리, 도로 위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오가는 '삶의 거리'를 향해 열려 있다. 수많은 희생자 각자의 이름이 한 줄의 생을 기록한 시나리오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하나의 살아있는 긴 '시퀀스 숏'(sequence shot)처럼, 죽은 자의 이름과 살아 있는 자의 시간이 맞닿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곳은 더 이상 죽음을 둘러싼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일상과 맞붙는 생의 가장 현실적인 무대처럼 비친다.
'뻬흐라셰즈'는 사라진 이름들 앞에서 삶을 반추하고 되묻는 자리를 나에게 내어주었다. 묘비 사이를 걷는 오솔길은 단절이 아닌 이어짐을 말해 준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등지는 이별이 아니다. 그것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쉼표 같고, 계절과 계절을 잇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이어진다. 삶과 죽음은 벽으로 나뉘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끝자락이 아니라 삶의 다른 이름이며, 시간의 숨결로 이어지는 연속의 무늬일 뿐이다.
죽음을 마주한 공간에서 죽음이 아닌 삶의 감정을 되짚어보는 장소로 '뻬흐라셰즈'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모두의 삶은 한 줄의 랩소디처럼 격렬했고, 짧았으며, 기억으로 이어졌다. 이 '뻬흐라셰즈' 묘지의 숲과 구불구불한 오솔길과 햇살 비추는 잿빛 돌무덤의 이름을 생각하며 나는 내 삶의 선율을 다시 듣는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겨질 작은 랩소디의 한 구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