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만드는 잔물결
언젠가부터 눈물이 쉽게 난다.
젊을 때는 이성적으로 억누르며 버텼던 순간들이 많았다. 감정이 요동쳐도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는 데 매우 익숙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나, 방송프로나 뉴스에 등장하는 이런저런 얽힌 사연들이 아무 예고 없이 마음에 먼저 감정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다른 이의 사연으로 인해 눈가에 촉촉하게 이슬이 맺히는 때가 늘어났다.
이런 변화가 단지 마음의 약해짐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는다. 그건 어쩌면 오래 살아온 뇌와 마음의 방식이 이제는 다르게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다루는 뇌의 변화에 따른 신체 반응의 변화인가 보다.
감정은 늘 마음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뇌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뇌과학에 따르면, 뇌의 전두엽이 하는 역할 중 하나인 자기 기분이나 감정을 억제하는 능력 즉, 뇌의 '브레이크'가 느슨해지기 때문에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진단다. 이 억제력은 20대 전반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쇠퇴한다. 그렇게 되면, 세월을 살아감에 따라 공감 능력인 ‘엑셀레이터’는 높아져 있는데, 억제 능력인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감정 눈물이 잦아진다.
결국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면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점차 느슨해져서, 예전 같으면 눌러두었을 감정이 이제는 걸러지지 않고 곧장 마음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지나온 세상살이에서 겪은 자신의 감정들이 다른 이의 애환이나 역경에 감정이입이 되는 한편, 자기 통제가 예전만큼 잘 안 되는 셈이다.
어린 시절, 울음은 흔히 어떤 약함의 징표처럼 알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종 눈물을 약함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연약한 사람은 눈물조차 허락하지 못한다. 감정을 드러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울 수 있다는 건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이자,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는 증거이자 용기이기도 하다.
삶을 겪으며 쌓인 시간과 기억, 그 속에서 익숙해진 마음의 골이 이제는 더 쉽게 무너지고 더 따뜻하게 젖는다. 그건 시간을 통해서 약해져서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아야 했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드러내고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눈물이 흐를 때, 나는 그것을 약하다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오래 버틴 마음이 조용히 풀리는 순간이고, 삶이 스쳐가며 남기고 간 오래된 마음의 잔결이라 여기고 싶다.
삶의 속도가 줄어들면, 그 틈새로 감정이 스며든다. 이해하려는 마음, 놓아주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생긴다. 과거엔 몰랐던 공감, 예전엔 못 본 풍경들이 비로소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그 여백이 눈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느새 이젠 내게도 그만한 여백이 생겼나 보다.
그래서 이제는 눈물이 부끄럽지 않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감정의 일부는 조용히 흐르는 눈물이 대신 전한다. 그건 과거의 시간이나 사람에 대한 회상일 수도, 애잔함이나 그리움일 수도 있다. 혹은 그냥, ‘살아있음’ 그 자체의 무게일 수도 있다.
'살아있다'는 건 여전히 '느낀다'다는 것이고, 그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흘려보내는 일은 시간을 견디고 살아온 사람에게 비로소 허락되는 것임을. 그래서 오늘도 눈물이 조용히 말을 걸어올 때, 나는 아무 말 없이 젖는다. 빛도 소리도 없이, 시간의 잔물결이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그런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