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엉꼬흐(Paris, encore)

파리, 또다시 - 기억과 현재가 포개지는 두 달

by 나름펜

한 낯선 도시가 사람을 품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한 사람의 마음에 남아, 몇십 년이 흘러도 불쑥불쑥 불러내는 데에는 얼마나 깊고 고요한 세월이 필요할까?


우리가 지나온 모든 장소는, 그 안에 우리만의 기억과 추억을 간직한다. 장소는 빈 여백을 품은 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 스며든 시간과 사람, 겪은 일들과 얽힌 사연들이 서서히 그 여백을 채우면, 마침내 그곳은 온전히 내 마음의 장소가 된다. 그렇게 채워진 장소는 의미가 되어, 다시 꺼내 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다. 그래서 어떤 장소는 마음 깊숙이 감기어, 삶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숨 쉬게 한다. 오래 흐른 세월 속에서 마음속 빛이 바래도, 결코 잊히지 않는 곳이 있다.


파리는 내게 그런 도시다.




내 삶의 한 시절은 파리에 있었다.


30년 전인 1995년 여름.

내 일생에 프랑스어를 처음 말했던 도시 리옹(Lyon)을 뒤로했다. 리옹은 모든 것이 낯설고 표정 하나조차 조심스럽던 시간에 나를 새롭게 다듬기 시작했던 도시였다. 나는 파리의 대학으로 옮기며, 또 다른 삶의 결로 들어섰다.


리옹에서의 시간보다 복잡하고 빠르게 흘렀지만, 그만큼 더 치열하고, 외롭고, 생생했던 파리의 나날들. 낯선 도시가 조금씩 나의 일상이 되는 법을 배워 나갔다. 한편으론 자유로운 이방인으로, 그러나 깊이 몸을 담그며 나는 도시 파리를 살아냈다.

파리의 8년여 세월, 그 시간은 내 내면의 언어와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인생의 깊은 층위를 나는 그곳에서 겪어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파리 시내 전경 모습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떠났다.

파리는 내 젊은 지난날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은 채 남아 있다.




그 여름 이후, 다시 파리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내 20대의 시간이 스며있던 그곳에서 바라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장씩 책장을 넘기듯, 일상의 날들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지금에 닿았다.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지금, 이제 한 생의 큰 매듭 앞에 서 있다. 내 일터에서 거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조용히 돌아보고 싶은 때다. 그런 순간, 마음속에서 오래된 장소 하나가 떠오른다. 오래전 그 여름 이후, 파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청춘의 뜨거움이 깃든 '소르본 광장'(Place de la Sorbonne), 그 광장을 조용히 지키고 서 있는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동상, 젊은 날의 질문들이 오래 머물던 노천카페들, 그리고 오래된 고요에 잠긴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이 거기 있다. 그 모든 장면이 내 마음속에서 아직도 잔잔히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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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카페가 있는 소르본 대학 앞 소르본 광장'(좌) _ '뤽상부르 공원'(우)

나는 이제 다시 그 시간 속 파리로 간다. 그리고 두 달간 그곳에 머물 것이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혼자가 아니다. 내 곁엔 아내가 있다. 그 시절엔 없었던, 그러나 지금은 늘 곁을 지켜주는 사람. 우리는 파리에 함께 다녀온 기억을 몇 번은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도 우리 둘 다 쉽지는 않았지만 긴 시간을 비워두고, 아무 일정도 없이 그저 그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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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의 퐁 네프(Pont Neuf)에서 바라본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 좌측 사진) _ '사랑해 벽'(Le mur des je t'aime, 우측 사진)

그러나 그 안을 다시 걷는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르다. 삶의 모양도, 호흡도, 기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이제는 한 문장을 말하기 전에 더 오래 침묵할 수 있게 되었고, 풍경 앞에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한 일인지, 비로소 마음 깊이 알게 되었다.




파리로 떠나는 마음


파리는 변했다. 나도 변했고, 그녀도 변했다. 그러나 우리가 같이 걷는 이 시간만은, 서로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충분한 배경이 되어준다. 그녀와 함께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여정의 단단한 이유를 가진다. 그 시절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을, 지금은 천천히 둘이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아마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 하루는 ‘바게트’와 산책으로 시작되고, 익숙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래 머무를 것이다. 그녀는 나보다 느린 걸음으로 파리를 느낄 것이고, 나는 그 옆에서 시간을 곱게 지나 보낼 것이다.

파리 '개선문'과 그 인근의 '파리 카페'(Le Café de Paris - Friedland 거리, 파리 8구)




파리의 시간 속으로


이 도시는 더 이상 추억만이 아니다. 이번 여정이 끝나면, 파리는 내가 정년 직전에 머물렀던 마지막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그 기억엔 내가 혼자였던 시절의 흔적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시간이 조용히 스며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시절과 오늘을 포개어, 파리로 간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도록 남아있던 나의 한 조각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에는 없었던 ‘우리’를 이제 그곳에 새겨놓기 위해서. 기억 위에 내려앉는 현재, 젊었던 날을 다시 마주하는 그곳으로, 그리고 고요함과 동행이 나란히 스미는 그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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