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퇴직'이라는 불청객
2023년 11월 16일...
55년 나의 인생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긴 하루가 힘겹게 지나갔다.
많은 분들이 기억을 떠올려 보면 금방 알 수 있으리라...
그날은 202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날이다.
바로 그날, 나의 큰 딸아이도 시험을 봤다.
아내와 나는 전 날부터 초긴장 상태였고, 새벽 알람을 열 개 가까이 맞추고 겨우 잠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밤새워 뒤척이다 새벽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고,
새벽부터 딸아이를 시험장에 보내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른 아침부터 웬 비는 그리도 추적추적 내리던지...
애를 차에 태워 수험장으로 데려다주고 아내와 나는 강남에 있는 봉은사로 향했다.
나의 부모님은 불교신자셨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아 언젠가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절에 기도하러 가는 것이 아주 익숙했었다.
그러나, 나와 달리 아내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고, 평소 절에 같이 가자고 해도 항상 정중하게 사양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봉은사행은 아내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자식 대입시험 보는 것이 평범한 가정에서는 엄청난 사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봉은사 경내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였다.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라 더욱 어수선하고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추슬러 딸아이를 위한 기도를 진심으로 올렸고,
아내와 함께 우산을 쓴 채 경내를 경건한 마음으로 거닐었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 의식을 치르고 나면 항상 개운한 마음으로 절을 나섰건만,
웬일일까? 오늘은 절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나의 머릿속에 또 한 가지 큰일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이날 오후 누군가로부터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회사에서 인사담당 임원을 오래 했다.
그래서 나의 퇴장은 내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
이 점이 내심 맘에 들었었다.
생각해 보라. 수많은 직장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는가?
그에 비해 나는 나의 마지막을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얼마나 안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가?
하지만 일이 안되려 하니 그해 초 나는 다른 보직으로 발령을 받아 그 소박한 꿈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수능 이틀 전 오후에 회사 인사담당 임원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그는 이번 인사에서 내가 퇴직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고 많이 미안해하며 귀띔을 해주었다.
퇴근 무렵에는 사장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와서 다음 날 사장님과의 퇴직 면담이 잡혔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있던 무서운 절차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착착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자괴감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다음 날 오전 일이 복잡하게 흘러갔다.
사장님은 갑자기 부친상을 당해 퇴직 면담이 취소되었고,
인사담당은 갑자기 내가 다른 관계회사로의 이동이 논의되고 있어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것이었다.
최종 결과는 수능일인 다음날 오후까지는 알려주겠다고 했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밑바닥에서 치올라 오는 느낌이랄까?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막판 뒤집기의 기적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았다.
인사담당의 귀띔부터 수능 당일까지 겨우 서른 시간 남짓 흘렀을 뿐인데 나에게는 그 시간이 일주일 이상의 기나긴 시간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다.
오십 중반 살면서 그렇게 간절했던 적도 없었으리라...
"간절합니다... 간절합니다..."라는 혼잣말을 수백 번도 넘게 입안에서 웅얼거렸던 것 같다.
더구나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아직 말할 용기도, 말할 타이밍도 아닌 것 같아 혼자 끙끙 거리고 있던 터다.
봉은사를 나와 아내와 나는 늦은 아침으로 무언가를 먹을 곳을 찾아 들어갔다.
어느 정도 배고픔이 해결되고 나서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고해성사를 하지 않으면 표정관리도 자신이 없었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사실 그날 오후까지 걸려 올 회사의 최종 통보를 기다리고 있노라고...
옛말에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아니다... 아내도 강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아내는 눈 빛 하나 흔들림 없이 덤덤하게 "그래... 기다려 보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큰아이 시험 때문에 머리가 터져 나갈 참이었을 건데...
오후 다섯시가 좀 넘어 아이의 시험이 끝이 났다.
수험장 밖에서 아내와 나는 기다리던 큰아이를 만났으나 섣불리 시험에 대해 묻기가 어려웠다.
눈치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도 표정이 밝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자기 내 핸드폰에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살면서 전화 걸려오는데 그렇게 긴장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았다.
인사담당이었다. 죄송하다고... 일이 잘 안되었다고... 낼부터 출근은 안 하셔도 된다고...
나는 머릿속으로 소리 질렀다. 제발 "농담입니다~" 하라고...
내 청춘을 바친 28년의 연극 무대는 그렇게 허무하게 커튼을 내려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는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 한참을 있다가 나왔다.
아마도 답을 맞혀 보는 것이리라 아내와 나는 아이를 방해하지 않았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어떻게 하냐면서...
아내와 나는 그날 오후 늦게 뉴스를 통해 금년 시험이 엄청 어려웠다는 소식을 듣고 알고 있었다.
2023년 11월 16일 밤 나는 밤을 하얗게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