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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코치 Jun 05. 2024

3. 돈 안드는 다이어트

<제1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퇴직'이라는 불청객

2019년 봄 무렵이었다.

나의 몸무게가 인생 최고치를 찍었었다. 90Kg...


20대 후반 갓 입사할 무렵 나는 178센티의 키에 72Kg 체중으로 딱 보기 좋은 정도의 체형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우연히 보았던 이맘때 나의 사진 속 모습은 다소 마른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주관적 견해이긴 하다.


하지만 결혼과 직장 생활 십여 년이 지나고, 그 세월의 훈장을 10Kg 늘어난 체중과 체형으로 수여받은 듯 

어느덧 나는 80Kg 대 초반의 튼실해 보이는 체형으로 변해 있었고, 

회식이 있는 날은 전형적인 배불뚝이 아저씨 체형으로 깜짝 변신하곤 했었다.


이후 한 십오 년 이상은 이 몸무게에서 조금 불었다가 다시 빠졌다가를 반복하며 그럭저럭 일관성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2018년 무렵부터 회사에서 맡은 직책이 너무나도 많은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탓에, 하루 일과도 힘들었지만 일과 후에도 늘 술자리가 많았고, 늦은 귀가 후에도 바로 잠이 들지 못하고 허전함을 달래려 야식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당연히 운동은 기약 없는 안녕을 선언한 상태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고백하건대, 주된 원인은 물론 스트레스였지만 그 속에 나의 타고난 왕성한 식욕과 식탐도 한몫했던 게 사실이다.

늘 아내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입맛이 없다는 게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또, 나는 술을 체질적으로 먹지 못한다.


젊은 시절 '음주측정기'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한 잔의 알코올이면 나의 얼굴을 선홍빛으로 물들이는 데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을 다녔던 나이지만 술로 인한 기억이나 추억이 전혀 없다.

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동년배들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런 몸으로 매일 강적들을 상대하며 술로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몸이 정상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부족한 주량으로 인해 술로 다 못 푼 스트레스를 야식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이 무렵 급격히 늘어난 체중으로 매일같이 찾아오는 피로함과 무력감 그리고 부대낌을 점점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바지를 입는 일이 매일 힘겨워졌다. 

아내의 눈치를 한껏 느끼며 가끔 큰 사이즈의 바지 쇼핑을 하곤 했지만, 어떤 날은 새 바지도 안 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날도 있었다.


도저히 버티다 못해 이 방법 저 방법을 알아보았고, 

그나마 쉬워 보이는 '한방 다이어트'라는 묘안을 찾아 과감히 지출을 감행하여 두 달여 만에 약 10Kg의 체중과 급격한 체지방 감소를 만들어 내었다.

아내는 집 나갔던 턱 선과 옷 핏이 다시 돌아왔다고 무척 좋아했다.

물론 좀 더 건강해진 모습에 진심으로 기뻐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두 달여라고 말을 쉽게 한 것 같은데 사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고민하면서 업무상 술자리도 줄여 나갔고, 먹는 양도 줄였고, 틈이 나면 걸으려고 했었고...

아무리 스트레스받아도 집에 와서는 물 외에는 먹지 않으려고 나름 의지를 불태웠던 것 같다.

나로서는 회사와 나의 건강 사이에서 상당 기간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보낸 결과로 얻어진 값진 선물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후 몇 달간 잘 유지되는가 하다가 어김없이 찾아온 요요현상과 함께 몸무게가 원복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많은 분들에게 근본적이지 않은 인위적 다이어트는 사상누각처럼 허무한 신기루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데, 회사의 퇴직 통보를 받고 한 달 가까이 지났을까?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에서 아무 생각 없이 체중계에 올라섰다가 내 눈을 의심하는 숫자를 보게 되었다.

몇 년 전 다이어트에 실패한 후 늘 85~6Kg를 유지하던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가 변해 있었던 것이다.

28년 만에 보는 '7'자였다...

예전에는 돈을 들여서 다이어트를 하고도 실패하였는데 돈 한 푼 안 들이고 체중이 줄었으면 기뻐해야 하거늘 갑자기 당혹스럽고, 지난 한 달의 시간을 지나 온 나에게 셀프로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아오르는 건 웬일일까?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당황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가 보다.

하지만 아내는 반색을 하며 크게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회사는 잘렸지만 옛날의 건강하고 멋있는 우리 남편이 다시 돌아왔구나... 세상 일은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공평한 것 같아..."


이 긍정의 화신이 내 곁에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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