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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코치 Aug 18. 2024

16. 여행,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제3부> 그래, 진정한 인생은 후반전부터

몇 년 전부터 나에게는 ‘버킷 리스트’ 하나가 생겼다.
 
퇴직을 하면 6개월 정도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다. 간혹 여행을 가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아보고, 사고, 체험하는 것보다 편하게 쉬면서 힐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여행지도 주로 동남아 휴양지 같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6개월씩 혼자 여행을 하겠다는 것을 버킷 리스트로 정한 것은 솔직히 직장생활이 힘들고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지는 때마다 ‘정신적 도피처’를 만들어 잠시나마 현실을 잊어버리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 생각을 떠 올리며 ‘어디가 좋을까?', ‘가서 무엇을 하지?’… 등을 생각하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떠나 나의 유토피아로 도망친 희열을 느꼈다 고나 할까?...


사실 이 엄청난 프로젝트는 어부인의 재가 없이는 실행에 옮기기가 힘들다.
아무리 아내가 천사표라 하더라도 나를 어떻게 믿고 6개월씩이나 혼자 여행을 보내줄까? 아울러, 이렇게 좋은 걸 나 혼자 독식하도록 놔둘까? 


그래서 아내를 설득한 것이 대략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한 삼십 년 힘든 직장생활을 하고, 특히 옆에서 지켜봐서 알겠지만 하루하루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던 임원생활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 그 상실감과 배신감에 ‘멘붕’이 와서 많이 힘들어 한대... 심한 사람들은 1~2년이 걸린다고 하네... 그래서 나도 나중에 한 동안 여행을 가야 될 것 같아…”


지극 정성으로, 때론 감언이설로 3년을 설득해서 드디어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였고, 가끔 둘이 있을 때 한 번씩 이 화제를 슬며시 끄집어내면서 다시 한번 확인 도장을 찍곤 했었다.


젠장, 이렇게 공들였던 나의 프로젝트, 나의 버킷 리스트가 생각지 않은 시기에 갑자기 퇴직을 하면서 완전히 공염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름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되는데, 준비를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퇴직을 당해 버린 것이다. 


실제 현실로 닥치고 보니, 치솟아 오르는 감정의 범람에 하루 종일 멘털 잡는 것도 쉽지 않아 여행을 간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가 쉽지 않았고, 만만치 않은 자금 소요가 턱 하니 현실의 벽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가까운 가평 쪽으로 2박 3일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용돈이 든 봉투를 손에 쥐어 주었다. “집에만 있어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길진 않지만 힐링도 좀 하고,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건 감동 그 자체였다. 퇴직 후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처음으로 가벼웠던 기억을 한참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남이섬과 청평호를 코 앞에 두고도 3일 내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퇴직 후 집에서 계속 나를 짓누르고 있던 그 감정들이 겨울바람에 날려가 버리기도 한 듯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고, 아직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방향으로 몸과 마음이 돌아설 것 같은 희망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 짧았지만 강렬했던 가평 여행의 기억에 힘입어 부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끔 여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아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고, 한 번은 퇴직 후 마음이 잘 통하는 동료 몇 명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나머지 한 번은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 2~3일 코스이고, 가성비 있게 다니려 준비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는 범위 내에서 하고 있다.


아내도 예전과는 다르게 시간에 쫓김이 없이 다니는 여행이라 무척 좋아하고 있고, 아예 하루 목적지만 정하고 가서 또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 하는 방식으로도 여행을 가자고 약속을 해 놓은 상태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


솔직히 예전에는 ‘여행’과 ‘관광’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여행 다닌다고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이제 개인적으로 ‘관광’은 별로 생각이 없다. 순수한 ‘여행’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힐링을 흠뻑 즐기면서 살고 싶다. 


가끔씩 ‘일상(日常)’과 ‘이상(理想)’을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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