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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코치 Aug 25. 2024

17. 직장(職場) vs. 직업(職業)

<제3부> 그래, 진정한 인생은 후반전부터

우리는 ‘직장(職場)’과 ‘직업(職業)’에 대해서 평소 얼마나 그 차이점을 인식하고 살고 있을까?


굳이 설명을 보태지 않아도 두 단어의 차이는 대부분 잘 이해하고 계실 것 같지만, 막상 일상에서 이 두 단어의 차이를 구분하고, 인식하면서 사는 분들은 크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실제로 나 자신도 지난 시간 동안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고, 내 주변 대부분 사람들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좋은 직장’을 가려고 노력한다. 경제성장의 둔화로 '좋은 직장'을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인사담당을 하던 시절 '대졸공채'를 실시하면 초기 서류전형 경쟁률이 모집정원 대비 100:1 이상으로 치열했었다.


나도 학창 시절부터 많이 노력했었고, 소위 ‘좋은 직장’을 다닌 경우에 속한다. 나의 직장 재직시절 ‘신분(Identity)’은 ‘명함’과 ‘재직증명서’가 대신해 주었고, 이 종이 쪼가리는 대인관계에서 늘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신용카드 발급, 은행 대출 등 제법 ‘無所不爲의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평소 인식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신분’이  ’이고, ‘’는 바로  신분’이라 착각을 하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 나의 ‘신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제의 나’ 그대로인데 나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다. 중년 남자들이 로망을 담아 즐겨 본다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나도 주말에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내가 하루아침에 바로 그 ‘자연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 그렇구나…
 
그동안 내가 ‘그 사람’이라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소위 ‘나의 정체성’, ‘나의 신분’은 ‘본연의 나’가 아니라, 내가 재직한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제공해 주었던 ‘나를 포장한 포장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포장지는 회사라는 울타리를 떠나며 벗겨지고 뜯겨 그 속에 숨어 있던 ‘알맹이의 나’로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그래서 꼭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아무런 ‘상표’가 붙어 있지 않은 ‘자연인’으로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갈 것인 지, 아니면 무언가 다시 ‘나’를 대표하고,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인 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업(業)’의 중요성을 나이 오십 중반에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직장’은 제한된 울타리 내 갇혀 있는 동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나이’라는 변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큰 한계를 가진 반면, ‘업(業)’은 울타리에 속할 필요도, 울타리를 건너 다니며, 그리고 나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예외적인 ‘업(業)’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퇴직을 하고 보니 처음 인사를 나눌 때 나를 소개하기가 때로는 막막하고, 때로는 쓸데없이 장황해지기도 하는 불편이 있고, 주변 퇴직 동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벌써 현직 때 빌린 은행 대출이 상환 압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사실 수많은 직장인들 중 자기가 정말 원하는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침에 눈 뜨며 즐겁게, 그리고 흥분된 느낌으로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또한 평생 ‘당위적 자아’를 쫓아 사느라 늘 허덕이며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롭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업(業)’을 찾을 때는 반드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 한다. 나름 ‘소명의식’도 가질 수 있고, 처음으로 죽기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기 위해서이다.


이제 ‘실업자(失業者)’가 아닌 ‘New 업자(業者)’로 거듭나기 위한 태동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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