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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013) 할아버지의 죽음과 믿음

by 우상권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쯤 막내삼촌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셨다. 어느날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데 여느때 처럼 어머니께서는 삼촌들이 모두 모여 있는 제사상에 얹어져있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고 통곡하며 원망 섞인 말을 늘어놓으셨다. 고사리 손 같은 어린 아이들을 두고 가면 어떻 하냐며 통곡을 하며 그렇게 분을 푸셨다. 그럴 때면 우리 4남매는 함께 울었다. 엄마가 우는 날이면 그렇게 이유 없이 슬펐고 함께 울었다. 그날도 통곡을 하시며 한참을 아버지께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하시고는 삼촌들에게 할 말이 있다며 들어달라고 하셨고 막내인 내가 곧 고등학생이 되면 밤늦게 돌아오니깐 할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며 삼촌들 중에 할아버지를 모셔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당시 삼촌들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삼촌 모두가 당황스러운 눈빛을 하셨고 하나둘씩 어머니와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셨다. 그때 막내 삼촌이 내가 모시께요~! 하면서 말씀하셨다. 막내 숙모는 조금 당황스러워 했지만 삼촌의 의견에 지지하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막내 삼촌 집으로 가시게 되었고 그 이후 우리 집에는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큰누나와 작은 누나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형은 대학생이 되었고 어머니께서는 다니시던 식당일을 그만두시고 동네에 작은 식당을 직접 차리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지내던 방은 고등학생인 내가 사용하게 되었고 방에는 작은 책상 하나와 친척누나에게 얻어온 침대하나가 전부였다. 할아버지방의 특유한 냄새가 한동안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라 내 마음 한구석에는 자유로움과 할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걱정도 함께 들어있었다. 이래저래 바쁘게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게 될 쯤 어느 날 일하다 말고 급하게 집으로 달려오셨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바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할아버지의 하루하루의 삶이 스스로에게도 괴로웠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할아버지의 죽음이 슬프지는 않았다. 되려 하늘나라에서는 할아버지께서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장례를 모두 치르고 어머니께서도 삼촌들도 서로가 왕래할 수 있는 할아버지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진채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고등학교2학년이 되었고 학교에서 저녁식사 이후에는 자율학습이라는 명분으로 저녁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의무였던 터라 우리 반 모두가 교실에서 숨죽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 반의 반장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덩치가 크고 성경이 순해서 별명이 임꺽정이었다. 성이 임씨라 누가 들어도 이름보다 임꺽정 이라는 별명이 더욱 친숙하기만 했다. 임꺽정 이라는 반장이 내 옆자리에 앉았었는데 어느 날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학교 초기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름 용기 내어 나에게 말을 걸어 온 것 같다. 내용인즉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농구 대회가 있는데 상권이 너 가 함께 해준다면 우승도 문제없을 것 같다며 나를 부추겨 세웠다. 친구로써 누군가가 처음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 주었기에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만에 가게 된 교회였고 농구를 한다는 생각에 설레임이 가득찼다. 하지만 그날 농구는 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는 것이었다. 친구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내가 많이 외로워하고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 하는 것 같아서 교회친구들을 소개 시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도 교회를 가게 되었고 예배를 드리는 내내 목사님설교 말씀이 졸리기만 했고 꾸벅꾸벅 졸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여느때처럼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생전 처음으로 너무나 따뜻한 무언가가 나의 온몸을 감싸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여태껏 느끼지 못한 너무나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이었다. 어릴적 부터 나에겐 아버지가 없었고 그 누구도 나를 지켜준다는 든든한 기분을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채 살아왔었다.

할아버지께서도 기저귀를 차고 손주의 도움을 받는 시한부 같은 나약한할아버지였고 도박을 좋아하고 아내에게 손지금을 하는 삼촌들도 나에게 장자의 든든함이란 어디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나에게도 어쩌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늘 지켜봐주시고 돌봐주시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같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날부터 하나님을 알게 되고 나의 삶은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과거 어둠이 가득했고 미래에도 똑같은 어둠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쩌면 나의 삶도 빛이라는 것이 있겠다 라는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 그 당시 나의 용돈은 하루 2000원이었는데 차비를 제외하고는 1000원을 하루하루 모아서 교회가는 날이면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다. 지금은 훨씬 더 큰 금액을 헌금하고 여러 곳에 기부를 하지만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않는 그때의 어린 나의 예물을 더욱 값지게 받아주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믿음으로 삶을 살기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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